090501-09 이집트03 - 아스완하이댐 미완성오벨리스크 누비안박물관
090501-09 이집트03 - 아스완하이댐 미완성오벨리스크 누비안박물관
090501(금) 인천공항--> 카이로
090502(토) 카이로--> 서부 리비아 흑사막 백사막도착 사막캠핑
090503(일) 사막투어 -->카이로 ----> 비행기로 아스완 이동 도착후
090504(월) 오늘은 4일째 아스완 관광 일정이다
어제 저녁 카이로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아스완으로 왔고..
오늘 일정은 오전에 아스완시내를 구경한 후 버스를 타고 3시간 걸리는 아부심벨을 갔다가
다시 와서 아스완에서 룩소로 출항하는 나일강 크루즈선을 탑승하는 일정이다
어제 새벽에 들어와 4시간 잠자고 다시 나서는 아스완의 멋진 호텔 - 나일강의 섬속에 위치한다
호텔 내부
호텔에서 바라본 나일강변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이집트 전통 돗단배 펠류카
나일강변의 펠류카 풍경
아스완에 정박하고 있는 크루즈선들
오늘 아스완 시내를 보고 아부심벨을 다녀온후 저녁에 이들 중 한 크루즈선에 승선할 예정이다
아스완 시내구경을 나섰다. 아스완댐 하류의 풍경
연꽃을 상징화 하였다는 아스완 하이댐 기념탑
나일강은 일년중 4개월정도 범람하였는데.. 이는 고대로 부터 하류 델타지역에 비옥한 농토를 만들어 주는
이유가 되기도 하였지만 현대 도시문명에서 치수를 하지 못하여 홍수가 연중 4개월씩 발생한다면 그것은
큰 재앙이 되곤 하였다
1902년 영국인이 나일강의 홍수조절과 관개용수 확보를 위하여 아스완에 댐을 만들었는데
이 아스완 댐으로도 나일강의 범람을 다스리지 못했다
그 후 나세르 대통령이 아스완댐의 상류 7km 지점에 새로이 하이댐 건설을 계획하여
다시 대 역사가 이루어졌다.
높이 111m . 제방 길이 3.6km. 저수량 1,570억m3. 저수지(낫세르 호) 길이 500km. 아스완 댐 상류 7KM 부근 나일강(江) 급류를 막아 건설한 세계 최대의 록필(rock-fill)댐이다. 1960년에 러시아의 기술 원조로 공사에 착수하였고 1971년에 완공하였다.
나일강변에 위치한 아부심벨신전
나일강을 따라 있는 고대 이집트의 많은 문화 유적들이 하이댐 건설로 인해 생긴 낫세르호수에 수장될 위기에 몰렸다. 정작 이집트당국보다는 유네스코가 중심이 되어 세계 수십개국의 원조를 받아 이집트고대유적의 이전이 추진되는 역사가 하이댐의 건설과 함깨 진행되었다
그중에서 대표적이고 최대의 어려운 공사는 아부심벨신전의 이전이었다.
수장을 막기위해 유네스코에서 아부심벨신전 이전작업을 진행
이 신전은 BC 13세기에 연안의 절벽을 파서 만든 것으로 높이 20m, 절벽 속의 너비 60m였는데, 신전을 구성하는 바위(砂岩)를 톱질하여 20∼30 t의 블록으로 절단한 다음 저수지의 수면보다 높은 위치로 옮기는 대역사가 같이 이루어졌다.
아스완 하이댐으로 생긴 낫세르 호수에 수장된 원래의 신전위치와
절단하여 절벽 산위에 새로운 위치에 이전한 아부심벨 신전 (누비안 박물관의 모형을 촬영함)
이 댐의 완공으로 나일강에 지속적으로 일정한 물을 공급함으로써
나일강의 홍수 제어는 물론 나일강변에 더 많은 경작지가 만들어지고, 다모작이 가능해졌다
이로써 이집트의 농업생산량이 200%이상 증가되었다
하지만 이 댐의 건설로 인해 나일강의 수량이 줄면서 비옥하던 하류 델타 지역에 바닷물이 역류하면서 토양이 황폐해 지는 등의 부작용이 생기고,500KM에 달하는 엄청난 낫세르호수의 물이 저장되어 지표에 흡수되어 지진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생태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 또 다른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어쨌거나 비 한방울 오지않는 사막지대에 이런 엄청난 호수의 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집트의
막대한 재산이 되고있다
수력발전에 의해 생산된 전기는 이집트 전체 전기사용량의 절반이상을 공급한다
댐 밑으로 일정량의 물을 계속 흘려보낸다
아스완 하이댐으로 인해 생긴 500KM의 낫세르호수와 고대유적들의 이전전과 후의 위치
댐의 하류
아스완 하이댐 바로 위 낫세르 호수에 위치한 필라에(필레) 신전과 신전으로 가는 배들
이시스(Isis)와 하토르 여신을 모신 필레신전은
B.C.4세기부터 A.D.4세기 초의 프톨레마이오스왕조 때와 로마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A.D. 535년에는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안 황제가 누비아인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고 난 후 신전을 성 스테판(St. Stephen) 교회로 사용했다고도 한다.
필레섬에 위치했던 필레신전은 아스완 댐 건설로 인해 생긴 나세르호수에
신전이 일부 수몰되었을 때에는
배를 타고 다니면서 신전을 구경했다는데
1960년대 후반에 이탈리아에서 신전 주변에 말뚝을 박아 물을 뺀 후
필레섬에서 500m 떨어진 아기르키아섬으로(Agilika)로 옮겼다고 한다.
신전 기둥의 아랫쪽은 검게 보이는데 이부분은 나세르호에 침수되었던 부분이라고 한다.
펠레신전 모형- 누비아박물관
아스완 거리풍경
여학생들
미완성 오벨리스크
아스완은 고대 이집트의 질 좋은 화강암 채석장이었다.
이 곳에서 바위를 통째로 갈라 다듬어 오벨리스크를 만들고 룩소르나 다른 곳으로 운반하였다니
실로 엄청난 대역사의 현장을 보는 것같다.
돌 덩어리 한개로 이루어진 오벨리스크는 그 크기와 무게가 실로 엄청나다.
프랑스가 룩소르 신전에 있는 오벨리스크 한 개를 파리 콩코드 광장으로 옮겼을때 현대의 기술로도 엄청난 고난이도 작업을 하였다는데..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이런 오벨리스크를 만들고 수백KM 떨어진 신전들로 이동시켰을 것을 생각해보면 실로 대단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이 오벨리스크는 70-80%의 공정으로 3면이 완성되고 바닥에서 분리하는 작업만 남은 중
고대 어느 석공이 오벨리스크 옆면의 돌의 눈을 잘못 건드려 돌의 결대로 세로로 쪼개졌다.
혹 그 석공은 죽임을 당했을런지 모르나
미완성인 채로 남아있는 오벨리스크는
고대에 어떻게 이런 작업을 수행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이 되어 남았다
이집트 룩소르신전에 있는 두개의 오벨리스크 중 파리 콩코드광장으로 옮겨 세워진 오벨리스크
콩코르드 광장의 오벨리스크
100918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서
프랑스가 오벨리스크 하나를 가져간 룩소르의 룩소르신전
정문앞에 쌍으로 서 있어야 할 오른쪽 오벨리스크가 기단부만 남아있다
누비안 박물관
이집트의 남부 아스완 -아부심벨 지역은 누비아 지방이라 부르며 이집트와는 인종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고대로 부터 이집트에 정복되어 이집트에 속해있다
기후는 전형적인 사막기후로 무척 덮고 비가 거의 없다.
유네스코에서 아스완댐으로 수장된 누비아지방의 여러 문화유적을 모아 누비아박물관을 만들어 주었다
람세스2세 석상
람세스2세는 누비아지방까지 진출하여 아부심벨을 정복하고
아부심벨에 거대한 자기의 석상을 세워 아부심벨신전을 만들었다
미이라들
누비안박물관에서 내려다 보이는 무슬림의 무덤들
사막의 급수차에 물을 담고 있다
오전 아스완 시내관광을 마치고 이제 아부심벨로 가는 시간이다.
어제는 이집트의 서부사막인 리비아 사막이었고..
오늘은 아스완에서 아부심벨까지 남으로 뻗은 사하라 사막을 달려야 한다
사하라 사막을 관통하는 도로
※ 여행사 안내문중에서
콘보이 : 아스완 ↔ 아부심벨 구간은 안전상의 문제(납치, 테러등등)로 인하여 이집트 경찰들의
호위하에 모든 버스들이 정해진 시간에 함께 이동하는 구간입니다.
전일 항공사정으로 늦은 밤에 호텔에 투숙함에도 콘보이가 새벽 시간대에 출발하는 경우가
다소 있습니다. 이점 유의 바랍니다.
경찰 호위를 받으며 버스로 아스완에서 아부심벨을 3시간 갔다가 구경하고 다시 3시간동안 오는 코스다
오늘은 콘보이가 오전 11시에 출발했다. 가끔 새벽 4시 콘보이도 있다고 한다
사하라사막의 풍광 - 피라미드를 닮았다
사막의 집들은 지붕이 없고 벽만 대충 있어 어찌보면 짓다만 것 처럼 보인다
사하라 사막의 정류장
4편 아부심벨신전편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