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111023 02편 충남전북 단풍과 사찰기행 - 성주사지 무량사 미암사

관오덴짱 2011. 10. 25. 15:14

111023 02편 충남전북 단풍과 사찰기행 - 성주사지 무량사 미암사

 

2011년 10월 23일 일요일


오전 06시 서울 집에서 출발

오전 08:40-09:45 칠갑산 장곡사

       10:15-10:40 칠갑산 천장호 출렁다리

       11:40-12:30 성주사지

      12:50-01:45 무량사

오후 02:15-02:30 미암사

       03:30-04:15 망해사

       05:05-05:55 익산 미륵사지

       06:10        왕궁리 5층석탑

저녁식사후 오후 7시 30분 서울로 출발 밤 11시 서울 집 도착

 

 

 

청양 칠갑산 장곡사와 천장호의 출렁다리를 보고선 보령의 성주사지를 들렀다

 

 

 

보령 성주사지 (保寧 聖住寺址)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2

 

보령 성주산 남쪽 기슭에 있는 9산선문의 하나인 성주사가 있던 자리이다.

백제 법왕 때 처음 지어졌는데 당시에는 오합사(烏合寺)라고 부르는 절이 있었다,

통일신라시대에 김인문이 이 지역을 봉지로 받은 이후 신라 왕실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

 

 

 

이후 신라 문성왕때 당나라에서 돌아온 낭혜화상이 절을 크게 중창하면서 성주사라고 하였다.

산골에 자리잡고 있는 절이지만 통일신라시대의 다른 절과는 달리

평지에 자리하는 가람의 형식을 택하였다.

 

 

절터에는 남에서부터 차례로 중문처, 석등, 5층석탑(보물 제19호), 금당건물과

그뒤에 동서로 나란히 서있는 동삼층석탑, 중앙 3층석탑(보물 제20호), 서 3층석탑(보물 제47호)가 있고

그 뒤에 강당이 자리하고 있다.

 

발굴조사결과 건물의 초석, 통일신라시대의 흙으로 빚은 불상의 머리,

백제·통일신라·고려시대의 기와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최치원의 사산비문 중 하나인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국보 제8호)도 절의 북서쪽에 있다.
성주사는 당대 최대의 사찰이었으며,

최치원이 쓴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는

신라 석비 중 가장 큰 작품으로 매우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통일신라 말에 유행했던 선종 사찰의 하나인 성주산파의 중심지이다

 

 

 

성주사지 전경

 

 

 

 

 

 

 

금당 앞에 5층석탑이 있고 금당 그리고

금당 뒤로 3기의 3층 석탑이 있다

 

 

 

 

성주사지 석등  유형문화재 33호 통일신라시대

 

 

 

 

성주사지 5층석탑  보물 제19호  통일신라시대

 

 

 

 

석등과 5층석탑

 

 

 

 

성주사지 석계단 문화재자료 제 140호 통일신라시대

 

돌계간 옆에 사자상을 조각한 측면석이 있어 예술성을 인정받아 문화재 자료가 되었으나

사자상은 1986년 도난당하였다

 

 

 

 

금당으로 오르는 석계단은 3군데가 있다

 

 

성주사지 금당터와 그 뒤의 3기의 3층석탑

 

 

 

성주사지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국보 제8호) 와  서 3층석탑(보물 제47호)

 

 

 

서 3층석탑  보물 제47호  통일신라시대

 

 

 

 

 중앙 3층석탑  보물 제20호  통일신라시대

 

 

 

 

 

동삼층석탑  지방유형문화재 826호 통일신라시대

 

금당뒤편 강당지 앞에 나란히 서 있는 3기의 탑 중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되지 않았다

 

 

성주사지 석불입상 지방문화재 자료 373

 

 

 

 

누군가 없어진 코와 눈 입 부위를 세멘트로 메우고 임의로 조성하였다

 

 

 

석불입상 자리에서 본 성주사지 전경

 

 

 

 

 

 

 

 

 

 

 

 

성주사지 북서쪽에 위치한 최치원의 사산비문 중 하나인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국보 제8호

 

 

 

 

최치원이 쓴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는

신라 석비 중 가장 보존이 완벽하고 큰 작품으로 매우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탑 아래 거북은 누군가에 의해 많이 깨져있다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쪽에서 보는 성주사진 전경

 

 

강당지 앞의 3층석탑들

 

 

 

다시 5층석탑과 석등

 

 

성주사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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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의 성주사지를 나와 인근한 부여의 무량사를 들렀다

2007년 6월 6일에 들러고선 두번째 방문이다

 

통일신라시대 문성왕(서기 839-856)때 범일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임진왜란때 모두 불타고 조선 인조때 진묵선사에 의해 중수되어 오늘에 이른다.

 

 

                                                       무량사 [無量寺]  일주문

 

주위의 산림(山林)이 울창하여 거찰(巨刹)의 면목을 유지하고 있는데,

보물 제356호로 지정된 극락전은 드물게 보는 2층 불전(佛殿)으로 내부는 상 ·하층의 구분이 없는

조선 중기의 건물로서, 당시의 목조 건축술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극락전 내에는 거대한 좌불(坐佛)이 안치되었는데 중앙의 아미타불(阿彌陀佛)은 좌고(坐高)가

16자, 가슴둘레 24자이며 좌우의 관세음(觀世音)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은

각 좌고가 16자에 가슴둘레가 18자이다. 또한 여기에는 석가불화(釋迦佛畵)가 있는데

길이 45자 8치, 폭이 25자 2치나 되는 조선 인조 때의 불화로 기구(機構)가 장대(壯大)하며

묘법(描法)도 뛰어나고 채색도 선명하다.


이 밖에도 경내에는 보물 제185호로 지정된 5층석탑, 보물 제233호인 석등,

지방문화재인 당간지주(幢竿支柱), 김시습 부도(金時習浮屠) 등이 있다.

 

이 절은 또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이 세상을 피해 있다가

죽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무량사 사천왕문

 

 

사천왕문 옆에 위치한 당간지주

 

 

가을이 물든 무량사 경내 전경

 

 

 

무량사 석등 보물 제 233호

무량사 오층석탑 보물 제 185호

무량사 극락전 보물   제 356호

 

 

보물 제356호로 지정된 극락전은 드물게 보는 2층 불전(佛殿)으로

내부는 상 ·하층의 구분이 없는 조선 중기의 건물로서,

당시의 목조 건축술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무량사 오층석탑 보물 제 185호

 

 

부여 무량사 소조 아미타여래 삼존좌상 (扶餘無量寺塑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  보물  제1565호

조선시대

 

부여 무량사 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중층전각으로 이루어진 극락전의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는데,

 17세기 대규모 사찰에서 널리 조성되었던 대형의 소조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 삼존상은 아미타·관음·대세지라는 분명한 아미타삼존 도상을 보여주고 있고,  

 이미 발견된 복장발원문을 통해 현진(玄眞)이라는 조각승과 1633년이라는 정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어 조선후기 조각사 연구는 물론 조각 유파 연구에도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거대한 규모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불신의 전체적인 모습이 도식적으로 단순화된 감이 있으나

양대 전란 이후 자존심과 자신감을 회복하고자 노력했던 당시 불교계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영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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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암사

충남 부여군 내산면에 있는 미암사


기도하고난뒤 쌀이 나왔다고 하는 바위가 있다

쌀미(米) 바위암(巖)를 따서 미암사(米巖寺)  비교적 최근에 조성되었다 


 33층 불사리탑 

 

 

세계 최대 와불이라고 하며 부처님 몸속 법당이 조성되어 있다

 

 

 

미암사의 쌀바위

 

미암사를 나서서는 김제의 망해사로 향한다

 

3편 종결편 김제의 망해사와 익산의 미륵사지 왕궁리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