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310 2편 서불산 낙산 서울성곽길
130310 2편 서불산 낙산 서울성곽길
서울의 내사산( 북악산- 낙산- 남산-인왕산)을 잇는 서울 성곽길은
서울의 4대문(숙정문,흥인지문,숭례문,돈의문터)과
4소문(창의문,혜화문,광희문,소의문터) 및
성곽길 18.2Km를 따라 걸으며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체험하는 길이다
맘먹고 하루에 걸으면 어른 걸음으로 전부 11시간이 소요되지만
구간 구간을 나누어 별 일정이 없는 휴일 오전에 잠깐 나서서
한 번에 2시간 정도 구간씩 쉬엄 쉬엄 즐기며 걷고선
오후엔 일과를 보는 일정으로 즐기면 더욱 좋을 것 같다
2009년 10월에 위 지도의 파란구간인 서울의 우백호인 인왕산 구간을 걷고선 너무도 좋아서
다음해인 2010년 10월 인왕산을 국사당과 선바위길로 다시 올랐었다
그리고 2011년 8월 7일에 위 지도의 주황색 구간인 창의문(자하문)에서 성북동 와룡공원까지인
서울의 주산 북악산길을 탐방하였고
2011년 8월 28일 위 지도의 분홍구간인 서울의 좌청룡인 낙산구간을 걷고
바로 지난해 2012년 12월에 가족들과 같이 낙산길과 이화동 대학로등 같은 구간을 걸었다
오늘은 정목스님이 계시는 정각사 순례길에 낙산성곽길을 걷게되었다
서울성곽 동소문인 혜화문에서 동대문까지 - 낙산코스
한성대 입구역에서 혜화역쪽으로 100M 정도에 위치한 서울성곽의 동소문인 혜화문
대학로나 창경궁로를 거쳐 돈암돈길을 차로만 싱싱 달리면 혜화문이 어디에 위치한지를 잘 모른다
서울성곽의 동소문으로 태조5년에 지었고 처음에는 흥화문이라고 하였다
중종때 혜화문으로 고쳤고
일제에 의해 해체되었다가 1994년도에 복원하였다
큰도로 옆에 언덕에 위치하여 인적이 드물고 성문도 닫혀있는데다
큰도로로 성곽마저 끊겨있어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북악산에 위치한 북대문인 숙정문에서 내려온 서울성곽은 혜화문에 이르러 큰 길을 두고
건너편과 끊어져 복원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큰 도로로 끊어진 성곽은 도로에 육교같은 구조물을 세우고
성곽을 원래보다 위로 지나게 하여서라도 복원하였으면 한다
참고사진: 수원 화성의 복원상태 사진이다
도로로 끊어진 수원화성의 구간을 가운데를 파고 버스가 지나다닐수 있도록 하여 복원하였다
(2010년 5월 수원 화성을 탐방하였을때 찍은 사진입니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 입구역 4번출구로 나와 100여 M 를 걸으면 성곽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을 만난다. 이 계단을 오르면 큰 도로로 인해 끊어진 성곽으로 오를 수 있으며
낙산 구간은 여기서 부터 시작된다.
길로 들어서면 여기가 서울의 한 켠인지 모를 정도로 아늑하고 정겨운 서울 성곽길이 나타난다
혜화문 뒤로 보이는 북한산의 정경이 시원하다
서울성곽의 쌓인 돌들은 태조,세종 숙종때등 시대에 따라 쌓인 모양이 다르다
왼쪽의 북한산 남쪽 최고 봉우리인 보현봉
오른쪽은 북한산 북쪽으로 북한산 최고봉인 삼각봉우리 만경대 -백운대- 인수봉
삼선교 부근의 주택가를 끼고 조용하고 한적한 성곽길 나들이가 너무나 좋다
성곽은 작은 길과 만나 나란히 가다가 구부러지면서 헤어지기도 한다.
성곽길을 따라 혜화문부터 잠시 걷다가 낙산으로 오르기 전
왼쪽으로 정목스님이 계시는 정각사가 보인다
정각사로 향하여 서불산 법우님들과 함께 예불과 명상 다담의 행복한 시간을 갖고선 ..
서불산 법우님들과 함께 낙산 구간을 오른다
앞서 낙산으로 오르시는 서불산 원문회장님
함께한 서불산 법우님들
조금 가파른 길을 올라 낙산 정상 가까이 다다르면
우뚝 선 성곽과 북한산이 마주한 모습이 장관이다.
낙산 성곽 바깥쪽에서 보는 최고의 전망사진이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전망 장소중 하나다
오른쪽의 인수봉- 백운대-만경대 북한산 봉우리들은 가운데 북한산 보현봉을 거쳐
왼쪽의 북악으로 이어지며 수도 서울 경복궁의 주산이 되었다
북악산과 서울성곽
낙산 정상에서 암문을 통해 들어가면 바로 낙산 정산 광장이다
낙산은 낙타의 등을 닮아 낙산이라고 한다
북악산을 주산으로 인왕산을 우백호로 낙산을 좌청룡으로 설계된 경복궁은 남향이 되며
무학대사는 우백호인 인왕산이 약간 높긴 하지만 좌청룡인 낙산보다 길이가 짧아 조선조의 장자계승이
어렵고 이로 인해 왕위 계승을 둘러싼 암투가 엄청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또한 200년 쯤 지난 시점에 나라의 존망이 위태로울 정도의 전란에 휩싸일 것이라고 주장하여
인왕산을 주산으로 남산을 우백호로 북악을 좌청룡으로 하여 경복궁을 동향으로 배치하자고 주장하였으나
예로부터 군주는 남향 하여 통치한다는 정도전에 의해 무학대사의 주장은 이루어 지지 않았다
조선이 개국되고 서울의 경복궁이 완공되고
얼마되지 않아 태종 이방원에 의해 왕자의 난이 일어나고
정도전은 이때 이방원에 의해 참살당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하겠다
또한 조선개국후 200년쯤 지난시기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등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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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정상인 낙산공원에서는 북한산의 조망은 좋으나 인왕과 북악은 오히려 잘 안보인다
아래 사진은 지난해말인 2012년 12월 24일 가족들과 함께 낙산- 이화동- 대학로를 들렀을때
낙산에 올라 바라본 사진을 참고로 올립니다
낙산에서의 조망은 정상에서 보다는 낙산에서 조금 내려온 낙산정인 팔각정에서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낙산정에서 바라본 인왕산 -북악산 - 북한산 보현봉 파노라마
낙산 팔각정에서 바라본 안산-인왕산 -북악산- 북한산 파노라마(2011년 8월 28일 사진)
흥덕이 밭
낙산 아래 동숭동에 있던 밭
병자호란때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한 뒤, 효종(당시 봉림대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심양에 있을때
따라가 모시던 나인 흥덕이라는 여인이 심양에 있으면서 채소를 가꾸어 김치를 담가서 효종에게 날마다
드렸는데 볼모에서 풀려 본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이 흥덕이의 김치 맛을 잊을 수가 없어
이에 효종은 낙산 중턱의 채소밭을 흥덕이에게 주어
김치를 담가 대궐에 대게했다하여 낙산에 '흥덕이 밭'이라는 지명이 전해진다
낙산에서 성안쪽으로 내려와 이화동쪽으로 조그만 가면
서울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은 달동네라 할 수 있는 이화동과 충신동 골목길이다.
이화 벽화마을이다
사진들은 지난해 12월 23일 방문때 사진
실핏줄 같은 길에 아기자기한 계단과 비탈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화동 벽화마을 계단을 내려오는 가족들
계단길 맨 위쪽으로는 서울성곽 낙산구간의 성곽이 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머무셨던 이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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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불산에서는 서울 성곽 낙산구간의 바깥쪽을 따라 그냥 쭉 동대문으로 향했다
서울성곽의 흥인지문 동대문이라고 불리운다. 보물 제1호
다른 4대문의 이름은 숭례문,돈의문,숙정문인데 비해 동대문만 흥인문이 아니라 흥인지문(興仁之門)이다
서울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동쪽의 낙산(駱山) 이 너무 낮고 풍수적 기운이 약하다고 해서
산의 능선 모양새를 나타내는 갈 지(之)자를 동대문의 이름인 흥인문에 추가해서
흥인지문(興仁之門)이라 하여 비보(裨補)를 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는
서울 남쪽의 관악산이 화기(火氣)가 있다고 하여 그 불기운을 막는다고 산꼭대기에 작은 연못을 팠다.
화산(火山)인 관악산이 늘 마음에 걸려 남대문 앞에 인공적 연못을 만들어 두었는가 하면
불기운은 불기운으로 막는다고 하여 '숭례문(崇禮門)'의 현판은 다른 4대문과 달리 세로로 달았다
서울을 화마에서 600년간 지켜온 숭례문이 몇년전 한 사람의 치기어린 행동으로 어이없이
화마에 스러져 현재 다시 복원중이다
서불산 정각사 순례 및 서울성곽 낙산구간 탕방 끝
잘보아주시고 답글 달아주셔서 감사드려요 - 관오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