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729-0801 01편 도문 두만강가에서 북한땅을 바라보다
2010년 7월 29일
인천에서 연길 직항
7/29 첫쨋날 연길도착하여 두만강변 도문(투먼)시로 이동하여 북한을 바라봄
7/30 둘쨋날 연길에서 이도백하로 이동하여 백두산 천문봉을 짚차로 등정하여 천지를 바라봄
짚차로 하산후 장백폭포로 다시 이동하여 1시간동안 폭포까지 산책등반
백두산 지역내의 호텔에서 숙박
7/31 셋쨋날 백두산에서 용정으로 이동 이동중 일송정 차창관람
용정의 대성중학교 윤동주 시비 이상설기념관 관람
연길로 이동 숙박
8/1 넷쨋날 연길에서 서울로
인천에서 서해 공해로 나가서 중국땅으로 들어가 연길로 향한다
북한 영공을 통과한다면 1시간이면 넉넉할 거리를 2시간 30분이 걸려야 한다
연변근처의 산하
연변의 중심인 연길시
중국 길림성(지린성) 중 연변은 중심이 되는 연길시와 그 주변 지역을 일컫는 말로
연길시와 훈춘시, 용정시, 화룡시, 도문시, 돈화시, 안도현, 왕청현 등 6개시 2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 1952년 9월 3일 탄생한 연변조선민족자치구는 헌법 개정에 따라 1955년 12월 자치주로
바뀌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구는 2001년 통계로 2백18만여명이며 그 중에서 조선족은 84만여명으로 38.4%를
차지한다. 면적은 길림성 전체의 23%인 42만7백㎢이다.
이는 중국 전체의 0.45%에 해당되며 경상남북도와 전라남도를 합친 것보다 넓다.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동쪽은 러시아와 232km, 남쪽으로는 `북조선`과 522km의 국경선이 있다.
서쪽은 길림성의 백산시와 길림시, 북쪽으로는 흑룡강성의 목단강시와 인접한다.
기후는 북온대 대륙성계절풍에 속하여 봄에는 건조하고 바람이 많으며 여름에는 덥고 비가 많다.
가을은 서늘하고 비가 적으며 겨울은 춥고 길다.
동부는 바다와 가깝고 서부와 북부 지방은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위도와 해발이 같은 다른 지방에
비해 비교적 겨울 기온이 높고 여름 기온이 낮은 편이다.
특산물은 산삼과 사과배, 송이버섯, 녹용, 웅담이 있다. 특히 '사과배'는 연변에서만 생산되는
특산물이다.
연길 공항에서
연변은 고구려와 발해 시기에는 그 영토에 속해 있어서 당시 유적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1909년 일제가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맺어 그 땅의 영유권을 청나라에 넘긴 뒤에도 독립
운동가들이 항일운동의 거점으로 삼았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가 된 곳이다.
연길공항내부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국 공산당의 소수민족 정책을 알아야 한다.
민족평등, 민족단결, 민족공동번영은 민족정책의 총체적 원칙이었다.
이 원칙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민족구역자치제도'라는 정책으로 구현되었다.
이는 각 소수민족이 그들의 거주지방에서 국가의 통일적 지도 하에 자치기관을 설립하고 자치권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 조선족 자치주는 전국 30개 자치주 가운데 유일하게 국무원으로부터 민족단결 진보모범자치주로, 1994년에는 국문화부로부터 전국문화모범자치주로 명명 받는 등 훌륭한 자치주로 발전시켜오고
있다.
연길 택시
현재 중국에는 5개의 자치구와 30개의 자치주, 124개의 자치현 등 모두 159개의 민족자치지방이
있는데, 조선족의 경우는 2개의 자치지방을 갖고 있다. 하나는 잘 알려진 연변조선족자치주이며
다른 하나는 이보다 급이 낮은 길림성 장백조선족자치현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세 번째로, 1952년 9월 3일 탄생한 연변조선민족자치구는
1955년 12월 자치주로 바뀌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국으로 이주한 조선인들은 새로운 이주지에서 큰 역할을 했다.
청나라가 2백여 년간 봉금지역으로 묶어 둔 불모지를 피땀 흘려 논밭으로 일구었으며
목숨을 바쳐서 놀랄만한 성과를 거두어 그 땅에 뿌리를 깊이 내렸다.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에도 이주 조선인들은 크게 공헌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한 뒤 공산주의 혁명과 토지개혁에 적극 참여했고,
중국 통일전쟁 때에는 큰 희생을 치르면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에 기여했다.
연길시내의 각종 구호 표지판들
'국가급 위생도시를 건설하고 건전하고 아름다운 생활을 향수하자!'
이 결과 조선족은 중국 55개 소수민족의 하나로 인정받아 자치 지방도 갖게 된다.
중국 역대 정치 지도자들은 대부분 연변을 방문하여 조선족자치주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조선족 자치주도 전국 30개 자치주 가운데 유일하게 국무원으로부터 `민족단결 진보모범자치주`로, 1994년에는 국문화부로부터 `전국문화모범자치주`로 명명 받는 등 훌륭한 자치주로 발전시켜오고
있다. 연변조선족자치주내에는 교회도 있다고 할 정도로 자치권을 보장받고 있다
하지만 인구의 40%가 해당민족이 되어야 자치주를 지속할 수 있는데 조선족의 인구비중이 점점
줄어가고 있어 걱정이 된다고 한다.
가이드 말로는 조선족 자치주는 대한민국이 잘 살게 되면서 다른 자치주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내몽골자치주는 모국인 몽고의 경제가 중국보다 못하다보니 자치주의 형편도
나이지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족자치주에서 많은 조선족들은 대한민국과 경제활동을 하는
동포가 늘면서 중국내에서도 상당한 부를 누리게 되고 지역도 활성화 되었다고 한다
연길시는 길림성(지린성)의 장춘보다도 백두산에 가까워 백두산관광의 거점이 되고 있다
연길시를 가로지르는 부르하통하
연이틀 내린 엄청난 양의 폭우로 하천의 물이 엄청 불었다고 한다
연길시 부르하통하의 천지대교
하천 제방에 고구려 벽화를 그려 놓았다
한민족의 민속의상과 의례도 그려놓았고
연변 조선족 자치주내의 간판은 조선어(한글)와 병기하여야한다
간판의 상단이나 좌측에 조선말을 같이 써야만 한다
연길시내
연길시내에 도착하여
곧장 도문(투먼)시로 이동한다
도문시(투먼시)는 두만강을 끼고 있는 도시로 북한과 접경한 지역의 도시다
중국의 동북3성인 흑룡강성(헤이룽장성)과 길림성(지린성) 요령성(량오닝성)은
동해와 단절된 내륙지역에 위치한 탓에
중국은 동북3성의 발전을 위해 동해로 닿는 항구개발에 국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도문등 두만강 접경도시를 통해 북한의 나진항으로 연결되는 경제루트를
만들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고한다
중국의 도문(투먼)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남양시와 닿아있다
도문(투먼)시내
길 건너 보이는 산이 북한쪽에 위치한 산이라는 설명에
다들 창밖을 유심히 쳐다본다
북한의 산이 점점 크게 다가오고
중국 도문(투먼)시의 도문강(두만강) 강변 유원지
북한에서는 때로 목숨을 걸고 넘어오는 두만강이지만
중국에서는 군인이 지키지도 않는 국경으로 그냥 일반시민이 강가에서 쉴 수있는 강변유원지다
배를 타고 강의 저쪽편 북녘땅 가까이까지 가 볼 수도 있다고 한다
(강은 서로 공유하므로 상륙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한다)
국경이래야 '변경주의사항'이란 조그만 간판하나가 고작이다
1. 불법 월경을 금한다
2.도문강 수면에서 놀지 못한다
밀수,마약매매,고기잡이등 변경 질서와 안전을 파괴하는 행위를 금한다
3. 조선쪽에 대고 말을 걸거나 촬영하지 못한다
평시에 두만강 유람선을 탈 수있다고 했으나
우리가 도착하기전 연변지역에 연 이틀 퍼부은 비는
두만강의 수위를 홍수 수위로 올려놓았다.
강속에 떠 있는 유람선 선착장으로 오르는 철제사다리가 거친 물 속에 잠겼다.
또한 엄청난 물살로 배를 타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다
배를 못타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두만강 건너편의 북녘땅 남양시를 바라본다
남양시내 노동당사에 걸린 김일성 사진을 망원경으로 보고 있는 일행들
북한땅 남양시
가운데 보이는 건물이 노동당사쯤 되는 건물이다
가운데 김일성 사진이 걸려있고 양쪽으로 구호가 적혀있다
김일성 사진이 걸린 건물을 망원으로 최대한 당겨서 찍어보았다
오른쪽으로 '조선노동당 만세! ' 라는 구호가 보인다
두만강 유람선과 중국국기
그 뒤로 북한의 남양시 전경이 나무사이로 보인다
두만강변의 나무들은 순식간에 거친 물줄기 속의 수중의 섬처럼 변했다
북한 남양시
건너편 북한쪽 산에 있는 길로 사람들이 움직이는게 보인다
역시 망원으로 촬영해보니 서너사람이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게 보인다
두만강가에서 물살을 보고 있는 중국인
두만강 유람선
두만강
두만강변에서..
변경법규 준수해 변경안정 수호하자
도문시 두만강 강변유원지
중국사람들에게는 그냥 여뉘 강가의 강변유원지 일 뿐이다
두만강변에서 무심히 북한을 바라보고 있는 중국 아이들
도문강 참대떼 표류
두만강의 물살이 거세어 지금은 모든 강가의 탈 것들이 운항을 멈추었다
비법월경은 법률 징벌을 받는다
유원지가 끝나는 지점의 두만강변
왼쪽은 중국땅 오른쪽은 북한땅이다
두만강변의 북녘 산하
북한의 산은 여름이라 풀이 덮여있지만 나무가 거의 없다
겨울이면 벌거숭이의 모습을 그대로 보일 것 같다
다시 북한쪽 길을 바라다 보니
이번엔 트럭이 한대 있고 주위에 네 사람이 보인다
북녘땅을 바라볼수록 묘한 안타까움과 짠함과 아쉬움 한줄기가 맘속에 흐른다
겨레의 옛 모습이 보입니다
중국도문변경
혼자서 타이머를 맞추어 놓고 사진을 찍고 있었더니 연변동포라는 조선말을 쓰는 사람하나가
자기가 구태여 찍어주겠노라고 하며 사진기를 건네받아 사진을 찍어준다
고맙다고 인사를 여러번 하고선..
조금 걸어와서 여기서 또 타이머를 맞추어 혼자 찍고 있노라니 아까 그사람이 쫒아와서는
자기가 찍어줄테니 이번엔 1천원을 달라고 한다
그냥 내가 혼자 찍어도 된다고하니
좋지 않은 소리를 퍼붓는다.
동포로서 자비심이 없다고 하며 아예 사진을 못찍게끔 훼방을 놓는다.
1천원이 문제가 아니라 정당한 이유가 있을때 돈을 주어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먼저 누군가 돈을 가치없게 뿌리고 다녔다면
후에 다른사람이 이와같이 봉변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다
덕분에 위 사진은 지나갈때는 그사람의 훼방으로 찍지 못했다가
다시 되돌아 오면서 그 사람이 없는지 눈치를 보아가면서
겨우 찍은 사진이다
고려문이라고 포토존을 설치해 놓았다
두만강 뗏목
두만강 뗏목표류는 그대를 반긴다
역시 불은 강물로 뱃놀이는 엄두를 못낸다
도문강 표지와 뗏목
웃통을 벗은채 강변에 서서 북한을 바라보는 중국 젊은이
두만강변 유원지 체육시설
도문시 사람들은 여유롭게 체육시설로 몸을 풀거나
마작같은 게임을 즐기거나
삼삼오오 모여 여러가지를 즐기고 있다
무심히 흐르는 두만강은 강을 사이로 두고
양쪽이 이처럼 다른 세상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시 한번 아쉬워서 두만강변 증명사진을 찍고
북녘땅도 한 번 더 쳐다보고
남양시도 한 번 더 바라보고 한다
도문시 두만강 강변 유원지 공연장에서 오늘 저녁 큰 공연이 열린다고 한다
위 사진은 도문시 공연을 위해 한국 포항에서 왔다는 농악공연팀
또한 역시 한국에서 온 태권도 팀
공연 리허설을 구경하고 있는 중국군인들
좋은 공연이 되길 기원하며
두만강변 공연장
다시 도문시에서 1시간가량 차를 타고선 연길로 되돌아와서는
남는 시간동안 연길시 진달래 광장을 찾았다
가운에 진달래 조형물이 보인다
연길 천지대교
연길 먹거리 골목 - 주종목은 개장이라 개장집 골목이라고 한다
2편 백두산 천지
3편 장백폭포
4편 용정
5편 연길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