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421 17편 인도 아그라 아그라성
080421 17편 인도 아그라 아그라성
아그라 관광일정이다
새벽 6시부터 아그라의 타지마할 관광을 끝내고 이어 아그라성을 둘러본다
Uttar Pradesh(우타르프라데쉬주), Agra District(아그라 구)
무굴제국의 옛 수도이자 타즈마할로 우리에게 익숙한 아그라
인도의 수도 델리, 핑크빛 도시인 자이푸르와 함께 골든 트라이앵들을 이룬다
인도 전역에서 가장 볼거리가 풍성한 곳으로 많은 관광객의 방문이 이어진다
한때는 대제국의 수도로 인도 전역을 호령했던 아그라지만 현재의 모습에서
고도의 면모를 찾아보긴 어려운 편이다
특히 무굴 제국이 멸망한 것을 계기로 정치적 구심점마저 사라지자
우타르 프라데쉬 주를 대표하는 중화학 공업단지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아그라 전역이 매연으로 가득한 것도 이 때문으로 타지마할과 아그라성을 잇는 2km의 녹지외에는
대부분이 공장지대로 도시 전체의 공기가 상당히 안 좋다
심지어 타지마할의 경우 향후 200년 이상은 지탱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이 전망마저 대두될 정도다
인도 문화재 관리국에서는 서둘러 문화유산의 안식년제 도입과공장철거를 주장하고 있지만
관광 사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아그라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공장의 철거와 이전은 실업자 문제 때문에
난관에 봉착한 것이 오늘날 아그라의 현실이다
아그라 성[ Agra Fort 요새 ]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의 타지마할 북서쪽 야무나 강변에 위치한 무굴제국의 성채로
1565년 무굴제국의 제3대 황제 악바르(Akbar) 대제에 의해 만들어졌다.
아그라성 테라스에서는 강 건너편으로 타지마할을 볼 수 있다.
1983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성벽과 성문이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져 ‘붉은 성’이라고도 불리는 아그라 성은
밖에서 보면 견고하고 딱딱한 느낌의 요새다.
성을 빙 둘러 해자가 있고 높이가 20m, 길이가 2.5km나 되는 성벽이 이중으로 성을 감싸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군사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견고한 성벽 안에 감춰진 내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크고 작은 궁전과 모스크, 정원의 테라스와 분수대는 야무나(Jamuna) 강 건너편의 타지마할이 그렇듯
동화적인 아름다움과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타지마할의 북서쪽 야무나 강변에 위치한 아그라 성은
1565년 무굴제국의 제3대 황제 악바르(Akbar) 대제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후대의 왕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증축되었다.
아그라 성 정문
1566년 무굴의 3대황제 악바르에 의해 건설된 아그라성은 무굴제국의 강대한 권력을 상징하는 건축물로서
악바르 시대에는 크고 작은 전투가 이어지는 군사요새의 목적이었으나
제항기르와 샤자한의 시대에는 평화로운 치세가 이어져 전투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건축에 남다른 애정과 재능을 보였던 건축광 5대황제 샤 자한(Shah Jahan) 시대에 궁전으로 변모되면서
화려한 건축물들이 대거 추가되어 아그라성을 세계에서 제일가는 건축물로 만들었으나
아이러니 하게도 샤 자한 왕은 그의 아들인 아우랑제브 왕에 의해 폐위되어 이 곳 아그라 성내
'무심만 버즈'에 유폐된 채 사랑했던 아내 뭄타즈마할의 무덤인 타즈마할을 바라보며
비참한 말년을 보내다 죽었다
샤 자한의 아들 아우랑제브(Aurangzeb) 때는 외부 성채를 건설하고
이중으로 된 성벽 사이에 물길을 설치했다.
이런 길을 따라 성 내부로 들어간다
아그라 성 내부의 제항기르(Jahangir) 궁전 은
악바르 대제가 어렵게 얻은 아들 살림(제항기르의 아명)의 탄생을 기뻐하며 왕자를 위해 지은 것이다.
아그라 성벽과 같은 붉은 사암으로 건설되었으며, 정교하고 화려한 조각이 일품이다.
악바르왕의 아들 제항기르는 성장한 후 왕권의 숭계문제로 부자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제항기르는 악바르 왕 말년에 왕위승계 문제로 반란을 일으겼다가
실패하자 오르차로 숨었다가 3년만에 악바르 왕이 죽자 그때 왕위를 계승하였다.
제항기르의 돌 항아리 1610년
돌 한개로 만든 거대한 물통이다
인도 터번중 각이 진 멋진 터번을 쓴 사람들은 시크교도들이다
시크교[ Sikhism ]
15세기 인도 북부에서 힌두교의 신애(信愛:바크티) 신앙과 이슬람교의 신비사상(神秘思想)이 융합되어
탄생한 종교로서 현재 신도만 전세계적으로 2천3백만에 이르는 세계 5대 종교 중의 하나이다.
시크라는 용어는 산스크리트어로 '교육' 또는 '학습'이라는 뜻의 시스야(sisya)에서 전례했다는 설과
'가르침'이라는 식사(siksa)에서 유래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시크교의 기본 사상은 바히구루(Vahiguru)라는 신의 메시지와 이름으로 개인적 수양을 통한 해탈을
목적으로 한다. 시크교도들은 교조 나나크(Nanak)를 포함 그의 후계자 9명의 구루(guru 法主)의
가르침을 따르고, 사회경제 및 종교에 관한 다양한 내용을 수록하고 있는 경전 구루 그란스 사힙(Guru Granth Sahib)에 따라 행동한다. 이외에도 시크교들은 주로 펀자브 지방의 역사, 사회, 문화와 관련된 제반사항을 교리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현재 신도들도 대부분 펀자브 지방에 거주한다.
교조 나나크(Guru Nanak Dev, 1469~1538)는 현재 파키스탄 영토인 라호레 지역에서 출생했다.
30세에 이르러 그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시크교의 철학은 나나크가 여행하면서 만난 라비다스(Ravidas)와 카비르(Kabir)의 가르침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또한 시크교는 바크티 운동과 수피즘의 영향을 받았으나 우상숭배를 하는 바크디 운동을 거부했고,
윤회사상을 받아 들였다. 시크교에서 신은 바히구루로서 형체가 없으며, 영원하며 눈에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신에게 다가가는 구원은 오로지 신과 관련되는 수행만이 길이다.
나나크는 신이 인간세계의 위에 있으며 모든 만물을 창조하였고,
영적 교감이 뛰어난 자는 신을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에 내면 수양을 강조했다.
시크교도들은 다섯 개의 K, 즉 kesh(깎지 않은 머리카락), kada(철팔찌), kirpan(단검), kangha(빗), kaccha(무릎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느슨한 브릿지) 등을 항상 몸에 지닐 것을 장려한다.
제항기르 팰리스 내부의 장식
제항기르 팰리스 내부의 우물로 비가 오면 빗물을 받아 성수로 이용했다고 한다
한편 흰 대리석으로 지은 카스(Khas) 궁전은 단아한 느낌을 준다.
무삼만 버즈
무삼만 버즈(Musamman Buj) - 서글픈 유폐의 성
‘포로의 탑’이라는 뜻의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는 8각형의 탑으로
샤 자한이 말년에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왕위를 폐위당하고
8 년간 생을 마감할때까지 유폐되어 살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테라스에 서면 샤 자한이 아내 뭄타즈 마할(Mumtax Mahal)을 그리워하며 만들었다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 타지마할이 아련히 보인다.
샤 자한은 이곳에서 날마다 타지마할을 보며 죽은 아내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자신의 왕위를 막내아들에게 박탈당하고 좁은 성채에서 생을마감할때까지 8년간 갇혀 살며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여 20년간 대역사를 펼쳐 만든 아내의 무덤인 타지마할을 바라보는 샤자한의
심정은 얼마나 비통하고 아프고 시리고 한스러웠을까?
무굴제국의 왕위 계승방식은 장자 계승이 아니라 왕자들 능력에 따라 왕위를 계승 시켰기 때문에
왕자들도 각각 개인 군사를 거느렸고 왕위 계승을 위해서 부자간 , 형제간등 혈육간의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 ,
한번도 평화로운 정권 이양이 없었다고 한다.
3대왕 악바르왕의 아들 제항기르는 성장한 후 왕권의 숭계문제로 부자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제항기르는 악바르 왕 말년에 왕위승계 문제로 반란을 일으겼다가
실패하자 오르차로 숨었다가 3년만에 악바르 왕이 죽자 그때 왕위를 계승하였다.
5대 샤 자한 왕의 막내 아들 아우랑제브 또한 반란을 일으켜 큰형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늙고 병든 아버지인 샤 자한을 아그라 성의 무삼만 버즈에 죽을 때까지 8년간 유폐시켰다
샤 자한에 대한 아우랑제브의 학대는 단지 아버지를 아그라성의 무삼만 버즈에 유폐하는데 그치지 않고
야무나 강물을 성 옆으로 흐르지 못하게 막아 성안의 우물들이 짠 물이 되도록 만들기도 하였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상황이 절박하자 샤 자한이 아우랑제브에게 간곡한 부탁을 적은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아그라성에서 바라보는 타지마할
왕비에 대한 애절한 사랑 탓일까?
무삼만 버즈에서 바라보는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은 가까이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는 타지마할보다
훨씬 낫다고 할정도로 매혹적이다
아그라성에서 2.5 Km 정도 떨어져 아련히 보이는 타지마할도 아그라의 심한 공기오염으로
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다고 한다
구글 지도에서 가져온 아그라성에서 바라본 타지마할 모습
디와니카스(Diwan-i-Khas) / 디완이카스(Diwani Khas)
황제의 개인 접견실로 쓰였다
델리 붉은 성(Red Fort)에서 있는 샤 자한의 공작좌(Peacock Throne)는 원래 이곳에 있었다.
건물 기둥사이로 저 멀리 떨어진(2.5Km) 타지마할이 아련히 보인다
타지마할에도 많이 사용된 피에트라 두라(Pietra Dura) 기법이 눈에 띈다
디와니카스 내부
강이 돌아가는 같은 편 강둑에 위치한 타지마할이 멀리서 바라보인다
디완이카스는 귀빈들을 맞는 왕의 접견실로 1635년에 건설되었으며,
제항기르 왕이 만든 검은색 왕좌가 놓여 있다.
디완이암(Diwan-i-Am)
샤 자한 황제가
1631년~1940년에 건설한황제의 공식 접견실로 붉은 사암으로 만든 뒤
백색 치장벽토로 장식을 했으며 내외부가 무척 호화롭다.
디완이암(Diwan-i-Am) 바로 옆에는 레이디스바자르가 있다
무굴의 여인들이 이용하던 여성전용 시장
아그라 성을 나오며
버스까지 걸어가는 일행을 따라 다니며 동냥하는 거지들
인도 교통상황
부채를 파는 소녀의 환한 미소
시간에 맞추어 기도를 올리는 이슬람 교도
18편 아그라 '파테뿌르 시크리(시크릿 성)'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