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170226 서울불교산악회 덕유산 백련사 순레 02편 백련사 ,무주구천동

관오덴짱 2017. 3. 6. 19:24

170226 서울불교산악회 덕유산 백련사 순레 02편 백련사 ,무주구천동




백련사 계단 (白蓮寺戒壇) 전라북도 기념물 제42

 

대웅전을 바라보며 오른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보면 절 뒷산 언덕에  부도가 하나 있다.

백련사 계단戒壇은 조선시대 흔히 볼 수 있는 석종형 부도로

그 크기만 조금 클 뿐인데 무슨 근거로 계단이라 부르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높이 약 2m, 둘레 약 4m에 이르는 우람하고 듬직한 자태가 믿음직하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이 부도의 주변을 일곱 번 이상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전하고 있어

적잖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기도 한다.

    



백련사 삼성각



덕유산 백련사(德裕山 白蓮寺)

 

33경을 품에 안고 25나 이어지는 구천동의 상류 끝에 백련사가 있다

 매표소를 지나서도 5.6Km를 걸어야 백련사의 일주문에 닿는다( 1시간 반)

하지만 길 한켠으로 구천동계곡을 끼고 걷는 길이라 지루하지 않다.

 백련사에서 3를 더 오르면 향적봉이 있다


삼성각에서 바라보는 덕유산 백련사 전경

 

신라 흥덕왕 5(830) 성주산문(聖住山門)의 개산조 무염국사(無染國師)가 창건했다는 말이 전해지지만

그외 따로 전하는 역사는 없다. 근대 이전의 역사로서 뚜렷이 전하는 바도 없다.

 

그나마 옛 자취는 한국전쟁 통에 온 절이 불타버리는 바람에 몇몇 부도를 빼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1960년대 이후 재건한 모습이다.



백련사에는 빼어난 건물이 있는 것도 우수한 석조물등 볼거리가 전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백련사에서 찾아야 할 것은 절이 주는 아름다움보다는 굽이굽이 이어지며 골골이 펼쳐지는

구천동계곡의 경치를 즐기며 걷는 산책의 길,

군데군데 서 있는 부도를 통해 덕유산의 너른 품에서 은자처럼 살다간 옛스님들,

수행자들이 걸었던 옛길을 되밟아가는 사색의 길로 삼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하겠다.


 

백련사 계단’(白蓮寺戒壇) 전북지방기념물 42

정관당 일선대사 부도(靜觀堂浮屠:전북유형문화재 102)

매월당 설흔(梅月堂 雪欣)스님의 부도: 전북유형문화재 43

 

19752월 일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백련사 경내에서 바라보는 삼성각




대웅전







약수터






범종각





천왕문









정관당 부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2

 

천왕문으로 오르는 계단이 시작되는 길 왼편에 석종형 부도가 하나 있다.

서산대사의 제자로 젊은 때부터 덕유산에 머물며 속세를 등진 채 수행했던 정관당 일선대사의 부도이다.


서산대사는 많은 눈밝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그 가운데 특히 뛰어나 독립된 하나의 문파를 이룬 제자가 넷 있었다. 사명 유정(四溟 惟政), 편양 언기(鞭羊 彦機), 소요 태능(逍遙 太能), 그리고 정관 일선 스님이 그들이다.



임진왜란 때 의승군(義僧軍)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승려의 본분이 아니라 하여

사명대사에게 빨리 관복을 벗고 승려의 본분을 다하라고 충고했던 사람이 정관대사이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덕유산에 머물렀고, 죽음조차 이곳에서 맞이했다.


 

석종형 부도라고는 하나 몸돌은 길숨한 원통형에 가깝고, 다만 윗부분을 꽃봉오리처럼 공글렸을 따름이다.

대좌에만 연꽃 무늬가 소략하게 놓였을 뿐 몸돌에는 아무 장식이 없고 지붕돌도 없다

 오히려 이런 모습 속에서 사명대사에게조차 어서 산으로 돌아오라고 말하던 스님의 수행에 초연했던

자세를 되새길 수 있을 듯하다. .

 

    



천왕문 오르는 길






매월당 설흔(梅月堂 雪欣)스님의 부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3


일주문을 들어서자마자 오른쪽 옆에는 석종형 부도 다섯 기가 나란하다.



그중 가운데 있는 것이 매월당 설흔(梅月堂 雪欣)스님의 부도이다.

부도의 몸돌에 梅月堂雪欣之塔이라고 음각한 명문이 보인다.



흔히 이것을 매월당 김시습의 부도로 오인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의 행적과 생애는 그다지 알려진 바 없다.

 다만 1772년에 만들어진 적상산 안국사 극락전 후불탱화의 화기에 증명(證明)으로

그 이름이 올라 있는 점으로 보아 이쪽 지방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졌던 스님으로 추측된다.

1784년에 세워졌다.






일주문은 공포가 대단하다. 4출목 내5출목으로 짜인 공포가 빼곡하니 처마밑을 채우고 있다.

덕택에 어찌 보면 기둥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지붕만이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형적인 가분수 집이면서도 아주 눈에 설지는 않게끔 불안정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1968년에 지은 건물이다. 그때 세운 것인데 이만한 솜씨를 보임이 놀랍다.

모두 새 건물이 들어선 백련사에서 잠시나마 눈길을 줄 만한 유일한 건물이 일주문이지 싶다.

 








백련사를 나와 매표소까지는 5.5 Km를 구천동 계곡을 따라 내려가며 걷는 길이다






자칫 지겨울 수 있는 길이 구천동 계곡의 얼음이 풀리면서 각양 각색의 모습들이

그 지루함을  면하게 해주었다








































삼공탐방지원센터에서 백련사까지 5.5Km

백련사에서 향적봉까지가 2.5Km 가파른 길이다




얼음커튼이라고 할까 얼음 레이스 식탁보라고 하여야 할까




백련사에서 반쯤 내려온 지점이다







투명한 얼음종이 금방이라도 청명한 소리를 내며 울릴것 같다







19경 비파담이다





비파담












그리고 드디어 삼공탐방지원센터



입구에 위치한 식당에서



버섯전골로 배를 채우고선 덕유산 백련사 순례일정을 마무리 한다


2월말이라 큰 기대없이 설천봉을 올랐다가 너무도 황홀한 상고대의 눈꽃 설경을 보고선 향적봉을 거쳐

백련사를 순례하는 일정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