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법의 말씀 24

금강경 제11품 - 제15품

금강경 제11품 ① 항하(恒河) : 원어 강가(Gang)의 음역. 인도의 설산(雪山)인 히말라야산맥에 근원을 두고, 동남쪽으로 흘러 뱅골만으로 흘러들어가는 갠지스강(Ganges)강을 말한다. 세존의 비유 가운데 자주 등장하는 강 이름의 하나로, 갠지스강은 길이는 2511km로 인도에서 인더스강 다음으로 길고 큰 강이다. 하류쪽은 강폭이 16km나 되어 바다와 같이 넓으며, 그 유역의 땅들은 매우 비옥하여 옛날부터 인도의 제국들이 도읍을 이 강가에 정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수천년을 두고 인도문명의 중심이 되었고, 불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와 철학이 이 곳에서 발생하기도 했다. 지금도 인도사람들은 이 강을 매우 신성시하고 있으며, 강의 이름으로 신의 이름을 삼기도 했다. ② 사구게(四句偈) : 사구(四句)로 ..

화엄경의 세계(탄허 법문)

화엄경의 세계(탄허 법문) 華嚴經의 世界 화엄경의 四句偈 佛是衆生心裡佛 불시중생심리불 隨自根堪無異物 수자근감무이물 慾知一切諸佛源 욕지일체제불원 梧自無明本是佛 오자무명본시불 부처란 중생들의 마음 속의 부처이다. (청량소의 三復次 같은 어름한 말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근기의 감당함을 따를 뿐 다른 물건이 없다. 즉 자기가 감당해서 옳소 하면 그뿐이지 그것 밖에 다른 물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도리는 참선하는 사람이 아니면 믿지를 못한다. 모든 부처님의 근원을 알고자 한다면, 즉 진리를 알고자 한다면 , 나의 무명,즉 우글우글하는 번뇌망상이 본래 부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통현장자의 화엄론 40권의 대의인 것이다. 앞서 말한 청량소의 三復次는 宗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연기를 면치..

임제어록

"쓸데없이 허공에 못을 박으려고 하지 마라." "벌거벗은 신체에 하나의 지위없는 참사람이 있어서 항상 그대들의 얼굴에 출입하고 있다." "대개 불법을 체득하기 위하여 수행하는 사람은 몸을 상실하고 목숨을 잃는 어려움을 피하지 말라." "나는 어떠한 사람이라도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체득한 경지를 분명히 파악하고 있다. 만일 이렇게 오는 사람은 내 앞에서는 마치 그의 본래심을 잃어버린 것과 같고 이렇게 오지 않더라도 노끈없이 스스로를 얽어매고 있다. 항상 언제라도 쓸데없이 짐작하고 분별하지 말라.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도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조불과 다르지 않은 경지를 체득하고자 한다면 결코 밖을 향해서 진실을 구하지 말라." "그대들은 이 그림자를 가지고 노는 그 사람을 파악하지 않..

스스로 믿고 밖에서 구하지 말라 - 임제선사

임제선사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요즈음 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믿고 밖을 향해서 찾지말라 그런데도 그대들은 모두 쓸데없는 환경에 사로 잡혀서 삿된것 과 올바른것을 도무지 구별하지 못한다 조사가 있다.부처가있다 하는 것은 다 교학속에서나 하는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의 글귀나 말을 가지고서 혹시 은연중에 나타나면 의문을 내어서 이리저리 생각하기도 하고 옆집에 찾아가 묻기도 하면서 어찌할바를 몰라 심히 번잡스럽기 만 하다 대장부들이여 보살들이녀 그대들은 주인과 도둑을 논하지말고 옳다 그르다 여색과재물등 쓸데없는 말로써 허송세월을 하지말라 나는 여기 에서 승속을 문제삼지 않는다 다만 오는자가 있으면 모두 다 알 뿐이다 그들이 어느것을 향해 오더라도 다만 음성과이름과 문구만있을뿐. 다 꿈이나 ..

무위진인(無位眞人)

무위진인(無位眞人) 어느 날 임제 선사가 대중 앞에서 설법(說法)을 하는 가운데 이렇게 말했다. “적육단(赤肉團)에는 일무위(一無位)의 진인(眞人)이 내재하고 있으며. 늘 나왔다 들어갔다 하고 있다. 인간에게 본래 갖추어진 이 진인을 만나지 못한 자는 빨리 만나보아라.” 여기서 말하는 적육단 이란 인간의 육체를 뜻한다. 그리고 일무위의 진인 이란 부처 또는 불심을 말한다. 한 스님이 물었다. “그 일무위의 진인이란 어떤 것입니까?” 그러자 임제는 대뜸 걸터앉아 있던 의자에서 내려와서 그 스님의 멱살을 잡고 물었다. “어디 말해 봐라. 말해 봐라.” 스님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그러자 임제는 그 스님을 떠밀고는 욕을 퍼붓고 돌아갔다. “무위의 진인인가 했더니 견시궐같은 얼간..

佛是衆生心裏佛 불시중생심리불 隨自根堪無異物 수자근감무이물

佛是衆生心裏佛 불시중생심리불 隨自根堪無異物 수자근감무이물 佛是衆生心裏佛 불시중생심리불 隨自根堪無異物 수자근감무이물 欲知一切諸佛源 욕지일체제불원 悟自無明本是佛 오자무명본시불 부처란 중생의 마음속에 있는 부처이니 자신의 능력을 따를 뿐 다른 것이 아니네 일체 부처님의 근원을 알여 하는가.? 자신의 무명을 깨달으면 바로 부처 일세 마음이 곧 부처라 是是非非言不休 시시비비언불휴 爭如端坐碧峰頭 쟁여단좌벽봉두 野猿啼唱無尋處 야원제창무심처 花落從他逐水流 화락종타축수류 시시비비를 쉬지 않고 말하니 어찌 푸른 산봉우리에 단정히 앉어 지낼만 같으랴 원숭이 울어대는 사람오지 않는 깊은 곳 꽃잎 떨어져 물을 따라 흘러가네 지주노조선사...地州魯祖禪師

但知不會 是卽見性(단지불회 시즉견성)

但知不會 是卽見性(단지불회 시즉견성)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 이것이 곧 견성이다. 보조국사 지눌(知訥)의 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이다. 그대는 “알지 못한다는 아는 것이 왜 견성인가?”라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는가? 이 간단하고 짧은 문구에 깨달음의 핵심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면, 그대는 아마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다. 그대가 만약 이 문구가 가리키는 바를 즉각적으로 알아차린다면 그대는 곧 바로 견성한 것이다. 우선 여기서 말하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 무엇을 가리키는가를 알아야만 한다. ‘알지 못한다’는 것은 분별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나와 너, 이것과 저것, 아름다움과 추함, 옳음과 그름, 잘나고 못남 등 언어에 의한 모든 상대적인 분별이 끊어진 상태, 생각이 들어오기 이전을 말한다. 그러..

坐忘좌망 坐馳 좌치

坐忘좌망 坐馳 좌치 坐忘좌망 좌망이란 수양(修養)의 극치로서 무아(無我)의 경지를 뜻하는데, 단좌(端坐)하여 일체의 물아(物我), 시비(是非), 차별(差別)을 잃어버리는 정신 상황이다. 장자에 의하면 이 좌망은 인의와 예악을 잊어버리는 단계를 거친 뒤에 있게 된다고 한다. 坐馳 좌치 비록 조용히 앉아 있다 하여도 정신은 밖으로만 분주하니,이를 좌치라 한다.

교상판석(敎相判釋) / 오시교판(五時敎判)

교상판석(敎相判釋) / 오시교판(五時敎判) 교상판석(敎相判釋) 부처님이 일생동안 설한 가르침을 분석하여 그 성격에 따라 시기별로 분류한 방법론. 줄여서 교판(敎判)·교상·판교(判敎)·교섭(敎攝)이라고도 한다. 즉, 불교의 다양한 교설(敎說)들을 여러 범주로 분류·종합하여 하나의 유기적인 사상체계로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원시적 형태의 교판 및 그 근거는 이미 인도의 대승불교 논사(論師)들의 저작 및 대승불교 경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교판은 중국에서 구마라습(鳩摩羅什) 이후부터 시작되어 9세기까지만 해도 약 30명의 대표적인 교판가(敎判家)들이 나왔으며, 한국과 일본에서도 교판이 행하여졌다. 교판은 원래 불교의 여러 경론(經論)이 한역(漢譯)되어 전파되는 과정에서, 그 다양하고 때로는 모..

일불승(一佛乘)

일불승(一佛乘) 부처님은 때로는 살아가면서 스스로 겪는 온갖 경험들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있는 연각의 길도 설하십니다. 사성제나 십이인연(十二因緣)의 설이 그것입니다. 불교에는 가르침이 참으로 다양합니다. 흔히표현 하기를 8만 천 근기에 따른 8만 4천 법문이라고 합니다. 불교 경전을 8만대장경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바로 그래서 입니다. 어찌 3승 교리뿐이 겠습니까. 그러나 수많은 가르침도 결국은 깨달음이라고 하는 하나의 종점에 귀결됩니다. 어쩔수 없어서 근기를 따라 각양 각색의 법을 펼쳐놓지만 사실인즉 모두가 부처님이라는 하나의 사실을 깨달는 것이 그종점입니다. 그리고 알고보면 또 출발점 이기도 합니다. 무수한 생을 거듭하면서 수행한다는 것은 부처님으로 출발하여 끝내 부처님으로 돌아오는 일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