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151128-29 경주 가족여행 09 영지와 무영탑(석가탑)

관오덴짱 2017. 9. 21. 13:01

151128-29 경주 가족여행 09 영지와 무영탑(석가탑)






영지影池





영지석불좌상 [影池石佛坐像 ] 경북유형문화재 제204

 

 

영지影池 저수지 남쪽에 있는 얼굴 모습을 알아볼수 없는 불상이다. 마멸이 심한 것도 있지만 원래 미완성의 불상이라는 말도 있다.


불국사(佛國寺) 석가탑(釋迦塔)을 건립할 당시 아사달을 찾아온 아사녀가 남편을 기다리다 영지에 몸을 던져 죽은 후 아사달이 그녀를 위해 조성하였다고 전한다.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완전히 갖추었지만 많은 부분에 손상이 있다.


 

얼굴은 알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건장한 신체와 허리, 양감(量感) 있는 무릎 표현 등에서 통일신라 석불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법의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右肩偏袒)이며, 수인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손모양을 하고, 자세는 결가부좌한 좌상이다. 수법이 석굴암(石窟庵) 본존불형식(本尊佛形式)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하대의 형식을 갖춘 팔각연화대좌(八角蓮華臺座)에는 쌍잎으로 된 앙련(仰蓮)의 연꽃무늬와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으며, 불신(佛身)과 한돌인 광배에는 번잡한 불꽃무늬 안에 화불(化佛)이 화려하게 새겨져 있어

당시의 대좌와 광배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광배 일부도 손상을 입었다.

 




***아래 이야기는 역사적인 사실이 전혀없는 순전히 허구적인 이야기로

밝혀졌지만 무영탑과 관련하여서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이야기라 옮겨본다

 

+아사달과 아사녀+

 

백제의 유명한 석공인 아사달에게는 아리땁고 어여쁜 아사녀라는 아내가 있었다.

신라에서 불국사 내에 석가탑을 짓고 있을 때 아사달은

김대성의 초청을 받아 신라로 갔다

 

아사달이 탑을 세우는 일에 온 정성을 기울이는 동안 한 해 두 해가 흘렀다

한편 남편과 만날 날을 고대하며 그리움을 달래던 아사녀는

기다리다 못해 천리 길을 마다않고 신라 불국사를 찾아왔다

 

하지만 탑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여자를 들여보낼 수 없다는

금기 때문에 남편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사녀는 그리움에 사무친 나머지 날마다 불국사

문 앞을 서성거리며 먼발치에서나마 남편을 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한 주지스님이 아사녀에게 말했다

여기서 십리쯤 떨어진 곳에 자그마한 못이 있소

지성으로 빈다면 탑 공사가 끝나는 대로 탑 그림자가

못에 비칠 것이오. 그러면 남편도 볼 수 있을 것이오.

 

아사녀는 할 수없이 주지스님의 말을 듣고 그 연못으로

가서 탑이 완성 될 때 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한편 아사달은 아내 아사녀가 신라 땅에 와서 자신의

일이 끝나기만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탑 마무리 작업을 위해 마지막 힘을 쏟았고

마침내 석가탑이 완성 되었다

 

그날 밤 연못을 들여다보고 있던 아사녀는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물속에 석가탑의 그림자가 거꾸로 서있는 게 아닌가.

 

여보아사녀는 남편이 보이는 물속으로 첨벙 첨벙 뛰어들었다

그녀는 남편이 너무 그리워 탑의 환영을 보았는지 모른다.

 

드디어 탑을 완성한 아사달은 아사녀가 영지에 있다는  

주지스님의 말을 듣고 영지로 달려갔다    

  

그러나 영지에는 아사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아사녀가  

신고 있던 신발만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아사달은 아사녀의 신발을 붙잡고 땅에 엎드려 미친 듯이 아사녀를 불렀다

 

이윽고 아사달이 눈을 뜨자 그 앞에 큰 바위가 솟아올랐다

      

아사달은 망치와 정을 들고 바위에 아사녀의 모습을 새겼다

 

작업을 끝내고 보니 그것은 아사녀가 아닌 거룩한 부처님의 상이였다  

그는 망치를 놓고 두 손을 합장하며 나무아미타불을 목 놓아 불렀다

 

그 순간 아사달은 연못에서 웃고 있는 아사녀를 보았다  

아사녀하고 외치며 아사달도 그 연못으로 뛰어들었다

 

그 후 세상 사람들은 이 연못을 영지라 부르고 끝내 그림자를 비추지 않은 석가탑을  

무영탑(無影塔: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고 불러오고 있다



 

아사달이 조각한 불상은 지금도 연못가에 쓸쓸히 앉아 계신다.

 

이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인 아사달은 황룡사 9층탑을 완성한  

백제 사람의 아비지의 후손이라고 전하며 이 이야기로 볼 때 백제의  

건축수준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938년도 현진건은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무영탑이란 소설을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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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26-27 경주 성지순례04 불국사 02


 


 

 다보탑과 석가탑이 있는 불국사는 법화경의 이치와 경전에서 설하신 내용을

지상에다 가장 정확하고 아름답고 멋있게  구현해 낸 법화도량이다.

 

 


 

 

 

 

석가탑   국보 제21호


 

다보탑과는 달리 당시의 전통적인 석탑양식을 취하고 있다.

탑의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으로, ‘석가탑’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부처님의 교화를 상징하는 탑으로 높이는 8m 20㎝이고 751 년에 세워졌다.

또한 석가탑은 이전에 세워진 감은사지 삼층석탑의 형태를 이어받은

우리나라 3층 석탑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탑의 주위에 배치되어 있는 여덟 개의 연꽃과 회랑은 이 곳이 성역임을 나타낸다.

 

탑 안에서 발견된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등

70 여점의 문화재는 일괄해서 국보 제126호로 지정되어 있다.

 

 

 

 

 

1966년 12월 탑을 완전하게 복원하면서 2층 탑신의 몸돌 앞면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던

사각형의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서 여러가지 사리용기들과 유물을 찾아냈는데,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국보 제126호)이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닥나무 종이로 만들어졌으며,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오다가 2010년 불교종단으로 이관되었다.



불국사(佛國寺) 대웅전(大雄殿) 앞뜰에 동서로 세워진 두 탑 중 서쪽에 있는 탑이다.

2층 기단 위에 세워진 일반형 석탑으로, 각부의 비례가 아름다운 우수작의 하나이다



 




이 탑은 ‘무영탑(無影塔: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여기에는

석가탑을 지은 백제의 석공(石工) 아사달을 찾아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 온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보지도 못한 채 연못에 몸을 던져야 했던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무영탑(無影塔: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 으로 불리우는 석가탑

 

빛이 있기에 존재하는 형상에는 그림자가 제 모습으로 드리워지지만

마음으로 빛을 거두어 들이면 그림자는 사라지게 마련이다.

 

무영탑(無影塔) 이란  해와 그림자라는 양변이 있으면 (형상화된 실체가 있으면)

 이해가 불가하다고 문광스님은 수업시간에 설하여 주셨다 

즉 공의 개념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비슷한 개념으로 여겨지는 것에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무영탑(無影塔)

무근수 (無根樹)

무향지곡 (無響之谷)

사방이 없는 땅뙈기

 

 

 

얼른 봐서 아름다운 것이 다보탑인가 하면, 볼수록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석가탑이다.

그냥보아서는 평범한 탑 같지만,  전체적인 비례와 균형의 조화로움이 그대로 아름다움으로 나타난다.       보면 볼수록 매료되는 것이 석가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