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226-27 경주 성지순례02 황룡사지
분황사를 보고선 담장 하나를 두고 있는 황룡사지로 향했다
왼쪽이 분황사고 오른쪽은 황룡사지다
더넓은 황룡사지
발굴된 터에서 나타난 사찰의 면적은 8,800평해 달해 불국사의 8배나 된다.
현재 사적 제 6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주 구황동 당간지주
황룡사지로 향하는 길에 있으나 분황사 남쪽에 있어 분황사의 것으로 추정한다
당간지주 사이에 동으로 향한 돌거북이 있어 받침돌로 쓰였으며 이는 특이한 양식이다
당간지주의 받침 돌거북을 보고 있는 무구심보살
화계불교대학 15기총무로서 이번 경주 성지순례를 주관하여
빈틈없이 준비하고 진행하시는 수고를 마지않으셨다
황룡사터는 경주시 구항동 분황사 앞뜰에 널리 펼쳐져 있다. 신라 최대의 절이자 호국의 대사찰로서 고신라 불교문화의 정수가 모두 모여 있던 유서깊은 사찰이다.
창건역사를 보면 신라 진흥왕 14년 (553년)에 월성 동쪽에 낮은 습지를 메워 새로운 대궐을 짓다가
거기에서 황룡이 나타났다 하여 이를 절로 고쳐 황룡사라고 하고 17년만에 주요 전각을 지어
569년 완성했다. 이 때 솔거가 이 절의 벽에 노송을 그렸다.
명실공히 신라 제일의 국찰이었다.
새로이 발견되어 복원된 황룡사지 우물터
584년(진평왕6년) 에는 금당을 지었다.
이후 당나라를 유학하고 돌아온 자장대사의 건의로 백제의 아비지에 의해 황룡사 9층목탑이 건립되었다
신라의 3보배라 하는 황룡사 장육존상, 황룡사 구층탑 및 진평왕 옥대 중 2개가 황룡사에 있었으며
신라 최대의 종이 황룡사에 있었는 데 몽고의 침입으로 없어졌다.
황룡사에서는 자장, 원효 등 신라 최고의 고승들이 설법하고
진흥, 진평, 선덕, 헌강, 진성의 제왕이 친히 설법을 듣던 곳이다.
1969년 7월 이곳 강당지를 발굴조사하여 금당, 강당, 탑지의 초석을 발굴했고,
1976년 3월부터 8년간의 발굴 작업에서 독특한 가람배치인 일탑 삼금당식으로 밝혀졌으며,
4만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기단을 비롯한 건물 하부구조는 확인되었으나 상부가구재의 정확히 고증되지 않아 전체적인 복원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기단부만 복원하였다.
발굴된 터에서 나타난 사찰의 면적은 8,800평해 달해 불국사의 8배나 된다. 현재 사적 제 6호로 지정되어 있다.
황룡사 금당터에 도착하여 가사를 수하시는 문광스님
황룡사 금당터에서 장육존상을 모셨던 대좌석 3개와 금당의 주춧돌들만 남았다
황룡사지 금당터의 3개의 대좌석 장육존상을 모셨던 돌이다
문광스님의 인도에 따라 장육존상이 계시던 대좌석을 향하여 모두 3배를 올린다
사방을 둘러보면 확트인 넓은 벌판에 멀리 높고 낮은 산들이
빙 둘러싸 황룡사 금당지는 서라벌의 명당 중 명당터 임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드넓은 황룡사 터가 아직 텅 빈 채로 우리에게 남아있다는 것은 우리의 커다란 희망이
있다는 것이라고 문광스님께서는 설명하여 주신다.
언젠가 신라의 호국불교의 대본산이었던 이 가람에 마땅한 불사를 일으킬 큰 인물이 나타나 국민의 뜻을
하나로 모아 여법하게 이 가람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면 한국불교와 우리나라는 대단한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이다
금당에서 바라보는 멀리 서라벌의 남산과 바로 앞의 황룡사지 9층 목탑터
이어 2월의 황룡사 금당 잔디밭에 모두 편안히 앉아 잠시 참선을 하여본다
참선하시는 문광스님
겨우내 눈을 머금은 땅의 습함으로 잠시간의 시간이었지만 하늘과 땅의 시원한 기운이
온 몸에 녹아드는 듯 하다.
신라 서라벌의 한 복판에 위치했던 호국제일가람 황룡사의 금당에 앉아
신라의 3대 보물중 하나였던 거대한 장육존상을 모셨던 좌대석을 바라보며
참선을 하는 도반들
14기 행원거사님
사방이 하나도 거칠것없이 남아있는 서라벌의 한복판 황룡사의 금당터다
모름지기 서라벌에 오면 황룡사 금당터에 앉아 산과 땅의 기운을 느껴볼일이다
금당의 주춧돌
신라 황룡사 금당의 장육존상의 건립에 관하여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내려오는데
인도의 아쇼카 왕이 철 5만 7천근과 황금 3만분을 모아 석가삼존불을 주조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를 배에 실어 바다에 띄우고 인연 있는 국토에 가서 장육존상으로 이루어질 것을 발원하며
1불과 2보살의 모형까지 실어 보냈다.
이 배는 천년의 세월을 바다에서 떠돌다가 일천년후 신라의 동쪽 현재의 울산만에 도착하였고
이렇게 울산만에 도착한 금과 철을 동축사(인도의 서축국에 대하여 동축사라 하였다고 함)에 모셔 두고
있다가 경주로 실어와 574년(진흥왕 35년) 3월에 장육존상을 주조 하였는데,
무게는 3만 5천 7근으로 황금이 1만 198분이 들었고, 두 보살상은 철 1만 2천근과 황금 1만 136분이 들었다고 한다.
경주 성지순례에 참여한 모든 도반들이 모여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고
금당지에서 바라본 경주 남산과 황룡사 구층목탑지
한 변에 8개씩 64개의 초석이 남아있고 탑의 중심에 있던 심초석이 남아있다
목탑지의 초석 하나도 면밀히 살펴보고
신라 584년(진평왕6년) 에 황룡사 금당을 지은후.
그 뒤 당나라로 유학갔던 자장율사가 태화지 옆을 지날 때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황룡사 호국룡은 나의 장자로 범왕의 명을 받아 그 절을 보호하고 있으니, 본국에 돌아가서 그 절에 구층탑을 이룩하면 이웃나라가 항복하여 구한이 와서 조공하고, 왕업이 길이 태평할 것이다.
또 탑을 세운 뒤 팔관회를 베풀고 죄인을 구하면 외적이 해치지 못할 것이다'라 했다.
자장은 귀국해 선덕여왕께 청하여, 구층탑을 짓게 되었다.
백제의 명공 아비지가 목재와 석재로써 건축하고, 용춘이 소장 200명을 거느리고 일을 주관했으며, 자장은 부처사리 100과를 탑 속에 봉안해 645년에 탑을 완성했다.
탑을 건립하는 중에 백제건축가 아비지가 기둥을 세우던 날 꿈에 백제가 망하는 현상을 보고 의심하여 일손을 멈추자 갑자기 땅이 진동하고 날이 어두워지더니 늙은 스님과 힘센 장사가 장육존상이 안치된 금당에서 나와 탑의 기둥을 세우고 사라졌다. 아비지는 이에 감동하여 자기를 후회하고 탑을 완성하였다. (삼국유사)
선덕여왕이 이 탑을 세운지 23년만에 신라는 3국을 통일하였고
후에 수많은 현철들이 신라 삼국통일은 이 탑의 영험이라 역사에 기록하고 있다.
스님의 제안으로 우리 모두 탑돌이를 하기로 하였다.
천천히 또는 느리게.. 무념으로 또는 정근을 하며..
도반들은 황룡사 어마 어마 한 탑을 상상하며
또한 그 탑이 우리 마음속에 다시 한 번 우뚝 솟길 바라며 탑을 돌고 또 돌았다
황룡사탑 건립 아비지 기념비
황룡사 9층 목탑
황룡사 9층 목탑(皇龍寺九層木塔)은 기록에 따르면 높이는 탑신부 약 65미터,
상륜부 15미터로 전체 80미터에 이르며, 이 탑의 기둥 속에는 자장이 중국에서 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
등을 봉안했다고 한다.
각각 제1층은 일본(日本), 2층은 중화(中華), 3층은 오월(吳越), 제4층은 탁라(托羅), 제5층은 응유(鷹遊),
제6층은 말갈(靺鞨), 제7층은 거란(契丹), 제8층은 여진(女眞), 제9층은 예맥(穢貊)을 의미하며,
이 탑을 건축하면 주변국들이 저절로 신라를 섬길 것이라 하여 553년(진흥왕 14)에 늪지 2만5000평을
메워 공사를 시작해 646년(선덕여왕 15)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몽골의 침입 때에 절과 함께 불에 타 소실되었다.
장엄한 구도의 행렬이다
박혜영보살님의 자제분들
홀로남은 황룡사지 9층목탑지의 심초석
목탑의 구조를 면밀히 살펴보시는호성거사님
잠시의 틈에도 기도하시고
우리의 순례는 이어진다
황룡사지를 나서서 다시 분황사를 거쳐 되돌아온다
경주시와 문화부는 이곳에 2034년까지 4단계에 걸쳐 총 사업비 2181억원을 들여
황룡사 복원사업을 추진키로 했다고 합니다.
그 계획대로 하면 지금이 2차 년도이지요
모쪼록 제대로 고증하여 불교계와 문화계의 의견을 다 반영하여 모든 국민의 염원을 다 담을 수 있게
여법하게 복원이 이루어 졌으면 합니다
2편 황룡사편 끝
3편 법화경의 도량 불국사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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