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10 인왕산 구간 서울성곽
서울의 서쪽에 해당하는 종로구 옥인동, 누상동, 사직동, 무악동, 홍제동, 부암동에 걸쳐 있는 인왕산은
조선 개국 초기에 서산(西山)이라 지칭하다가 세종때부터 인왕산(仁王山)이라 불리게 되었다.
경복궁 홍례문에서 본 인왕산 전경
조선왕조의 새 수도인 한양의 경복궁은 북악산을 주산으로 인왕산을 우백호로
낙산을 좌청룡으로 삼는 터에 건설되었다
본래 인왕이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金剛神)의 이름인데 조선왕조를 수호하려는 뜻에서 산의 이름을 개칭하였다 한다.
인왕산하면 호랑이 이야기를 뺄 수 없다.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년전, 인왕산은 호랑이의 횡행으로 난동이 끊이지 않았다. 경복궁 내정이나 창덕궁 후원에까지 들어와 소란을 피우고 고양등지의 민가에까지 침입하여 그 피해인원이 수백명에 달하자 조정에서 군대를 출동시켜 호랑이 잡이에 나설 정도였다. 그래서 지금도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가 없다'는 말이 전해 지고 있는 것이다.
호랑이가 활기를 치고 다녔던 터이고 보니 산의 형세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좌청룡 우백호를 이루는 보기드문 명당으로 청와대의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고 있다. 90년대 초반까지는 청와대를 비호한다는 이유로 출입이 금지되었다가 지난 93년부터 출입이 허가되었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 (霽 는 비갤 '제' 입니다)
1751년, 지본수묵(紙本水墨). 79.2 cm x 138.2 cm 삼성미술관 리움 국보 제 216호
조선 후기 화가인 겸재 정선(1676∼1759)이 1751년(영조 27)이 그의 나이 75세때
이레간의 지루한 여름 장마비가 지나간 뒤 삼청동(三淸洞)·청운동(淸雲洞)·궁정동(宮井洞) 쪽에서 바라본,
비에 젖은 인왕산 바위의 인상을 그린 것으로, 일기변화에 대한 감각표출과 실경의 인상적인 순간포착에
그의 천재성이 충분히 발휘된 그림이다.
진경산수작품 가운데서도 같은 시기에 함께 국보로 지정된 《금강전도(金剛全圖)》와 함께 대표작으로
꼽힌다. 비에 젖은 암벽의 중량감 넘치는 표현으로 화면을 압도하는 인왕산 바위의 대담한 배치와
산 아래 낮게 깔린 구름, 농묵(濃墨)의 수목이 배치된 짜임새 있는 구도는 옆으로
긴 화면설정과 함께 현대적인 감각도 풍긴다.
특히 그림의 중앙을 압도하는 주봉을 잘라, 대담하게 적묵법(積墨法)으로
괴량감(塊量感)을 박진력 있게 재현한 솜씨는 동양회화권 내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작품이다.
그림의 오른쪽 아래에 있는 집은 겸재와 매우 절친한 친구였던 사천 이병연의 집인데
이 그림을 그릴 당시 이병연은 노환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고 한다.
비온뒤 맑게 개는 인왕산의 모습처럼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가 병을 훌훌 털기를 바라는 마음과
어쩔수 없이 맞게될 친구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이 배어나는 그림이라고 한다.
보통 경복궁역에서 5분거리에 있는 사직공원을 기점으로 잡아
황학정에서 선바위- 모자바위-범바위쪽으로 능선을 타나
서울 성곽의 보수작업으로 이 길은 2010년 말까지 잠정 폐쇄되었다
분홍색선이 내가 등산한 길이다.
지난번 인왕산을 처음 찾았을때 선바위를 못보아서 이번엔 선바위를 볼 수 있는
인완산 국사당쪽으로 들입머리를 잡았다
무악 현대아파트에서 올라가야한다
좁은땅에 2층 높이로 지어진 양옥집.
집터가 승용차 넓이와 비슷해보인다
인왕산 능선을 따라 새로 복원 조성중인 서울성곽이 보인다
서울성곽 복원공사로 인해 등산로 우회 안내표지판
인왕사 대웅전과 선바위
인왕산 능선을 따라 서울성곽은 내달리고
국사당과 선바위로 접근하는 이쪽은 도성의 바깥쪽이다
'서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1114 북촌 (0) | 2010.11.22 |
---|---|
101114 창덕궁 후원(비원)의 단풍 (0) | 2010.11.15 |
070211 오봉산 석굴암 (0) | 2009.12.04 |
091018 인왕산 등산 (0) | 2009.10.19 |
090927 아들친구와 놀아주기 02편 - 인사동 (0) | 2009.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