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522 제6회 동기 야유회 담양 01편 소쇄원, 식영정
2011년 5월 22일 일요일 오전 6시에 강남구청에서 만나서 담양으로 출발
오전 9시 30분경 담양의 소쇄원에 도착하였다
소쇄원(瀟灑園)은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원림(園林)으로
우리나라 선비의 고고한 품성과 절의가 풍기는 아름다움이 있다.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조성한 것으로 스승인 조광조(趙光祖)가 유배를 당하여 죽게되자
출세에 뜻을 버리고 이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 소쇄원이라 한 것은 양산보의 호(號)인
소쇄옹(瀟灑翁)에서 비롯되었으며,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 담겨있다.
입구에서 단체사진
소쇄원 오르는 길만 하여도
올곧은 선비의 기상과 사림의 정신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길 양쪽으로 대나무숲이 우거져 있어담양의 기운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소쇄원에 들어서면 계곡 건너 아래쪽에 자리잡고 있는 사랑채 격인 광풍각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길을 따라 조금 더 나아가면 사방 1칸의 초가지붕으로 되어 있는 조그만 정자인 대봉대가 보인다.
대봉대란 봉황새(귀한 손님)를 기다리는 정자인데, 그 곁에 봉황새가 둥지를 틀고 산다는
벽오동나무를 심어 두어 시원한 벽오동나무의 그늘에 앉아 귀한 손님을 맞을 수 있도록
하였다한다.
대봉대를 지나 담장을 따라가면 담장에 붙은 '五曲門'이란 현판이 보인다.
오곡문은 원래 내원 북동쪽 담장에 있었던 문이었으나 지금은 문은 없고 담장에 현판만
보존되어 있다.
소쇄원의 담장은 참 토속적인 모습이다.
돌과 흙으로 담을 샇고 그 위에 기와를 얹은 전통적인 담장이다.
담장 아래로 계곡 물이 흐르고 있으며, 담장 너머에 우물인 정천(頂泉)이 있다
오곡문(五曲門) 담장 밑으로 흐르는 맑은 계곡 물은 폭포가 되어 연못에 떨어지고,
계곡 가까이에는 제월당(霽月堂: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주인집)과
광풍각(光風閣: 비온 뒤에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란 뜻의 사랑방)이 들어서 있다.
소쇄원에는 영조 31년(1755) 당시 모습을 목판에 새긴 「소쇄원도(瀟灑園圖)」가 남아있어
원형을 추정할 수 있다. 이곳은 많은 학자들이 모여들어 학문을 토론하고,
창작활동을 벌인 선비정신의 산실이기도 했다.
지금의 소쇄원은 양산보의 5대손 양택지에 의해 보수된 모습이다.
조그만 계곡을 건너 담장을 따라 오면 '소쇄처사양공지려'라는 현판이 담장에 붙어 있다.
이 현판은 송시열이 썼다고 알려지고 있는데,
'려(廬)'라는 것은 '오두막' 또는 '자신의 집을 낮춰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제월당아래 사랑채인 광풍각
담장을 따라 가면 주인집 격인 제월당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인 팔작지붕의 한식기와 건물인 제월당은 주인이 거처하며 조용히
독서하고 공부하는 곳이었다.
당호인 제월(霽月)은 '비 갠 뒤 하늘의 상쾌한 달'을 의미한다
제월당에서 광풍각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조그맣고 좁은 문인 협문을 통해야 한다.
광풍각은 소쇄원의 하단에 있는 별당으로 건축된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한식기와 건물이다.
제월당이 주인을 위한 집이라면 광풍각은 객을 위한 사랑방이라고 할 수 있다.
광풍각 마루에 앉으면 계곡과 폭포가 눈 앞에 들어와 소쇄원의 멋진 경치를 감상하기에 적격이다.
소쇄원은 건물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어 인공과 자연이 마치 모두가 한 몸인 듯
자연스럽다.
광풍각에서 돌아나오기 위해서는 위교라는 조그만 다리를 통해 계곡을 건너 나오게 된다
올곧은 선비정원인 소쇄원은 남도지역의 대표적인 문화관광명소로서,
우리 조상들의 멋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
광풍각과 왼쪽위 제월당 모습
소쇄원을 나와 잠깐의 시간을 내어 식영정을 보고 가기로 하였다
가사문학관 옆에 위치한 식영정(息影亭)은 달 그림자도 쉬어가는 곳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담양 일대의 많은 아름다운 정자들 중에서도 경치가 빼어나기로 유명한 곳이다.
2009년 국가지정 명승으로 승격 지정되었다
식영정을 오르는 입구에는 송강 정철의 가사문학을 기념하는 석비가 세워져 있는데,
송강의 '성산별곡'이 바로 이곳에서 탄생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석비다.
식영정은 담양의 많은 정자들이 그렇듯이 언덕 위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고 주위엔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어 수려한 경관과 주변을 조망하기에 좋은 곳이다.
식영정은 석천 임억령의 정자다.
조선 명종 15년(1560)에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이 스승이자 장인인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을 위해 세운 정자이며,
식영정이라는 이름은 임억령이 지었다.
석천은 이곳에서 '식영정 20영'을 지었는데 김성원, 고경명, 정철 등의 제자들이 차운하였으며,
이들 네 명을 '식영정사선(息影亭四仙)'이라 불렀다.
이런 이유로 식영정을 '사선정(四仙亭)'이라 부르기도 한다.
임억령, 김성원, 고경명, 정철 등 식영정 사선은 성산의 경치 스무 곳을 택하여 각 20수씩 80수의
식영정 이십영을 지었는데, 이것이 후일 송강의 성산별곡을 이룬 밑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7년전인 2004년 4월 4일 처음으로 담양을 찾았을때 식영정에서
아이들이 아빠와 엄마를 찍어주는 사진이다
아이들 세명이 동시에 아빠와 엄마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첫째는 핸드폰으로 둘째는 아빠가 준 자기 디카로
세째는 손으로 카메라 모양을 만들어 시늉을 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식영정 언덕에 서면 아름다운 광주호가 솔 숲사이로 들어와 그 멋진 광경에 탄성이 나온다.
담양의 정자들이 모두 빼어난 조망을 자랑하지만
그 중에서도 식영정이 최고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식영정은 애초 계획에 넣지않았으나 잠시 짬을 내어 올랐던 식영정
솔숲과 어우러진 광주호의 빼어난 풍광에 다들 너무도 좋아해주는 장소가 되었다
송강은 9세 때인 1545년 아버지가 을사사화로 유배되었다가 1551년에 풀려나자 한양에서
선대의 고향인 담양 창평으로 옮겨 살았다.
27세에 등과하기까지 그리고 벼슬을 그만둔 후에도 성산 기슭을 흐르는 송강 가의 기암 누정과
대숲을 벗삼아 많은 가사와 시를 읊었다.
처녀작인 성산별곡을 비롯하여 사미인곡, 속미인곡, 서화당, 식영정, 잡영 등 많은 작품은
이 고장을 배경으로 읊은 것이다.
광주호가 생기기 전에는 정자 바로 밑으로 자미탄이라는 여울이 있었고, 물섶을 따라 백일홍이
십리나 자랐다고 한다.
성산은 이 지방에선 아직도 별뫼라고 부르며 식영정의 일대를 일컫는데, 당시의 시인들이 이곳에
모여 뒤에 있는 별뫼와 앞에 흐르는 자미탄을 주제로 시와 노래를 많이 읊었다고 한다.
식영정은 단층 팔작집으로 온돌방과 대청이 절반씩 차지하고 있다.
식영정엔 현재 보수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식영정 솔숲
2009년 9월 국가지정 명승(名勝)으로 승격 지정되었다.
식영정 경내에는 성산별곡(星山別曲)을 새겨놓은 석비가 있다.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은 식영정에서 바라보이는 별뫼를 주제로 하여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성산
주변의 풍경과 그 속에서 노니는 선비의 풍류를 그린 가사로, 식영정이 유명세를 타도록 만든
주요한 요인 중의 하나이다.
식영정 주위에는 수령 100년이 넘는 소나무들이 여럿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달 그림자도 쉬어가는 이곳의 멋진 풍광에 한 몫을 더하고 있다
식영정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서하당(棲霞堂)과 부용당(芙蓉堂)이 보인다.
서하당은 김성원이 1560년(명종 15)에 식영정과 함께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로 없어졌다가 최근 복원된 것이다. 현재 보수공사가 진행중이어서 정자를 살펴볼 수 없어 아쉬웠다.
부용당은 1973년 식영정의 부속건물로 복원한 아름다운 정자이다.
02편 메타쉐콰이어숲길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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