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100221 겨울여정 05편(끝) 월정사

관오덴짱 2010. 3. 15. 15:21

100221 겨울여정 05편(끝) 월정사

 

 100221 새벽 선자령 오전 양떼목장 오후 황태덕장 점심  그리고 발왕산을 다녀온 후

 오후 4시 반경 월정사에 들렀다.

 

월정사는 2004년 1월에 들러고 두번째 방문이다

 

 

일주문을 통과하여 1Km 거리의 전나무 숲을 걸으며 올라가야 하지만

찻길이 일주문과 나란히 있어 차로 월정사까지 그냥 올라 갈 수 있다

  

 

 

월정사 주차장에 차를 두면 해탈문부터 들어가게 되지만

 상원사 가는 길까지 더 올라 월정사의 한복판인 용금루로 들어갔다

 

 

 

 

 

오대산 월정사라고 적힌 용금루

 

 

월정사 전나무 숲길

 

 

 

 

오대산과 월정사


오대산은 높이 1,563m. 태백산맥에 솟아 있으며, 주봉인 비로봉(毘盧峰)을 중심으로

동대산(東臺山 : 1,434m)·호령봉(虎嶺峰 : 1,042m)·상왕봉(象王峰 : 1,493m)·

두로봉(頭老峰 : 1,422m) 등 5개의 봉우리가 있다.

 

 

봉우리 사이사이로는 중대(中臺 : 지공대)·동대(東臺 : 만월대)·서대(西臺 : 장령대)·남대(南臺 : 기린대)·북대(北臺 : 상삼대) 등 5개의 평평한 대지로 둘러싸여 있어 오대산이라고 했다.

 

또한 동대에 관음보살 진신 1만, 서대에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1만, 남대에 지장보살 1만, 북대에 500 대아라한(阿羅漢) , 중대에 1만 문수보살이 머무른다 해서 5대가 형성됐고, 부처의 정골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중대 위에 자리 잡았다.

 

 

 

오대산의 동대에는 관음암·서대에는 수정암 ·남대에는 지장암 ·북대에는 미륵암 ·중대에는

사자암 등 암자가 있는데,

이 암자들은 월정사(月精寺)의 부속암자이다.

 

월정사는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에 위치하며,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의 본사로, 643년(신라 선덕여왕 12)에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불의 정골사리를 모시어 귀국한 뒤

영축산통도사 영월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설악산 봉정암과 이 곳 오대산등 5군데 적멸보궁에

사리를 봉안하고 월정사를 창건했다.


그 뒤 많은 스님들이 중창하였으나 6.25 전쟁때 모든 건물이 불탔다. 이후 만화스님이 적광전을

중건하고 이어 수많은 분들의 원력으로 다시 대가람을 이루게 되었다

경내에는 월정사8각9층석탑(月精寺八角九層石塔 : 국보 제48호)·

월정사석조보살좌상(月精寺石造菩薩坐像 : 보물 제139호) 등이 있다,

 

 

 

월정사는  주지이신  퇴우 정념스님의 원력아래 각종 수련활동을 실시하고 단기 출가학교 및

불교 교양대학을 개설하는 등 지역사회를 위한 다양한 자비 구현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월정사 단기 출가학교는 TV에 소개된 적도 있다

(한달간 단기 출가를 하여 각종 수행을 체험하게 된다)
 

 

 

단기출가학교게시판

 

 

단기출가학교 - 적멸보궁 삼보일배

 

 

서로 부처되기- 서로에게 108배를 함으로서 하심하며 상대를 존중하며

각자 내면에 있는 불성을 깨닫게 하는 수행이다

 

 

1Km 거리의 일주문까지 월정사 전나무 숲길 삼보일배등의 행사가 있으며

한 달이 끝나는 날에는 3천배로써 회향한다

 

 

눈에 쌓인 월정사 경내

 

 

 

 

 

  적광전과   월정사  8각  9층석탑(月精寺八角九層石塔 : 국보 제48호)·

 

 

 

설선당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앞에는 2004년 1월 처음 월정사를  방문하였을때는 없던

공양하는 석조 보살좌상을 모셔놓았다

 

 

 

종과 북을 같이 둔 종고루

 

 

 

월정사를 대표하는 사진

 

 

종고루 옆에 위치한 수각

 

 

 

 

 

 

 

 

 

 

 

천왕문

 

월정사 경내에서 천왕문으로 빠져 나와 다시

입구인 일주문까지 뻗어 있는 전나무 숲길을 먼저 걸어보기로 했다

 

 

전나무숲 안내표지판

 

워낙은  일주문--> 1Km 정도의 전나무 숲길--> 해탈문 --> 금강문--> 월정사 경내로 들어가게 되나

차로 월정사 경내까지 가게 되므로 전나무 숲길을 걸어보려면

경내에서 나와 전나무 숲길을 걸어 일주문까지 갔다가

다시 경내로 되돌오는 왕복을 해야한다.

 

 

새벽부터 대관령-선자령을 왕복하고 발왕산을 다녀오는 등

무척 많이 걸어 다리와 발바닥은 몹시 아프지만

인적이 거의 없는 전나무 숲길을 걷는 것 만으로 다시 행복해진다

 

 

 

멀리서 숲길을 걸어 일주문까지 갔다 되돌아 오시는 행자복을 입으신 분이

전나무 숲길의 모델이 되어주신다.

 

 

 

월정사 템플스테이에 참여하신 분이다.

 

보통 템플스테이는 주말인 토요일 오후 들어와서 저녁예불과 차담시간을 갖고

1박한 후 다음날 새벽예불과 포행등 오전 일과를 끝으로 일정이 끝나지만

월정사는 템플스테이가 매일 있다고 하며

본인 희망에 따라 1박2일 2박3일등 일정이 다양하다고 한다

 

그래서 일요일 오후인 지금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경내에 남아 있었다

 

 

 

수령이 500년 가까이 되다가 지난 2006년 태풍 매미때 꺽어져 수령을 다한 전나무

 

 

 

 

 

 

일주문 안인 전나무 숲길에 위치한 성황각

 일주문 안에 성황각을 그대로 남겨놓았다는 것은 불교가 토속신앙을 포용한 흔적이다.

 

사찰에 산신각,칠성각등이 있는 것을 일부에서는 미신적인 요소라고 성토를 하기도 하지만

불교 또한 엄연한 외래종교로 이 땅에 들어왔고

이후 토속신앙과 마찰하지 않으며 흡수하여 포용하는 면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부안의 내소사와 광릉 수목원과 함께 한국의 3대 전나무 숲길이라고 한다

 

 

 

 

드디어 일주문까지 내려왔다.

일주문을 찍고선 다시 월정사 경내로 숲길을 왕복하여 올라간다

 

 

 

 

전나무 숲길로 걸어 내려오시는 분들

 

 

‘나라 안의 명산 가운데서도 가장 좋은 곳으로 불법이 길이 번창할 곳’이라고 했던 일연의 예언대로

불교의 성지가 된 것은 오대산의 후덕한 품성 덕분일 것이다.

 

불교와는 다른 측면에서 오대산을 명산으로 꼽은 이도 많다. 이중환은 “오대산은 흙산이면서 천 바위, 만 구렁이 겹겹으로 막혀져 있다. 가장 위에 다섯 축대가 있어 경치가 훌륭하고 축대마다 암자 하나씩 있다. 중대에 부처의 사리를 간직했다.

 

상당 한무외가 이곳에서 선도를 깨쳤는데, 연단(鍊丹)할 복지(福地)를 꼽으면서 오대산이 제일이라고 했다”고 <택리지>에 썼다. 조선 중기의 도사 한무외는  스스로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오대산은 또 조선시대 사고가 위치했던 곳이다.

월정사와 오대산장의 중간에서 왼쪽으로 800m 지점에 사고터와 영감사가 있다.

상원사, 적멸보궁, 비로봉에 이르는 길과 달리 사람의 발길이 거의 미치지 않지만 <택리지> 이후 오대산의 지리와 역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곳이다.

 


이곳이 사고지로 지정된 데는 사명대사의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영감사 원주인 각수 스님에 따르면 사명대사가 이곳 영감암에 5년 동안 머물면서 퇴락한 월정사를 복원하려고 했다.

 

이때 사명대사가 이곳이 오대산의 복장이고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라고 주청해서 사고를 세우게 됐다는 것이다. 조선 조정에서 삼재가 들지 않는 곳을 사고지로 삼은 것은 임진왜란 이후이다.

 

왜군이 왕조실록 등 중요한 기록이 보관된 사고를 표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먼저 고려시대 이래 가장 많은 전적을 소장한 충주 사고가 왜군에 의해 불탔다. 성주 사고의 실록은 땅에 묻었으나 왜군에 발각돼 유린됐다. 춘추관 사고는 선조가 도성을 버리고 피난간 뒤 백성의 방화로 사라졌다. 유일하게 전주 사고의 실록을 포함한 서책만 현지 관리와 민간 유생, 승려들이 내장산 깊숙한 암자로 옮겨 전화를 피할 수 있었다.

 


임란이 끝난 뒤 선조는 전주 사고본을 토대로 실록을 4부 더 만들어 춘추관․태맥산․묘향산․마니산․오대산 등 이른바 5대 사고에 보관했다. 이 가운데 오대산 사고본은 전주 사고본을 재출판하면서 만들었던 교정본으로서 먹 또는 붉은 색으로 교정한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어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오대산 사고본의 역사는 우리 기록문화의 수난사를 압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과 불과 바람의 삼재가 들지 않는다는 사명대사의 주장대로 오대산 실록은 300여 년 동안 안전하게 지켜졌다. 그러나 한일합방 후인 1914년 5대 사고본 중 유일하게 일본으로 강제 반출되는 비운을 맞았다. 식민지 연구 자료로 삼기 위해서였다.

 

동경제국대학 부설 도서관에 있던 오대산 사고본은 1923년 간토대지진 때 대부분 불탔다. 남은 것은 교수들이 밖으로 대출해간 74책뿐이었다. 일제는 1932년 이 가운데 27책을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에 나누어 보관했는데, 나머지 47책은 각계각층의 노력으로 2006년에야 서울대에 기증 형식으로 환수됐다.

 

 

 

일제가 실록을 수탈해간 뒤에도 오대산 사고 건물은 무사했다가 6.25 와중에 우리 군의 작전에 의해 불태워졌다. 삼재를 피하더라도 인재만큼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 일제의 수탈을 피하지 못했고, 북한 인민군의 퇴각로와 무장공비의 침투로로 이용된 것에서 보듯이 오대산은 누구든 막지 않고 품에 안을 뿐인가. 사고 터에는 영감사가 들어섰다가 1992년 다시 사고에 자리를 내주고 그 뒤에 옮겨지었다. 원래 영감암으로 불리다가 사고를 지키는 사고사(史庫寺)의 임무를 맡으면서 사(寺)라는 칭호를 받은 영감사의 역사 또한 우리의 기록 수난사와 맥을 같이 한다.

 

 

 

 

 

 

다시 성황각을 지나 2006년에 쓰러진 고목을 만난다

 

 

숲길을 다시 오르는 동안 모델이 되어 주신분

 

 

1975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오대산은 소금강 지역까지 영역을 넓혔다.

두 지역은 여러 면에서 성격이 다르다. 우선 행정구역상 월정 지구는 평창군 진부면,

소금강 지구는 강릉시 연곡면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기후도 백두대간 서쪽의 월정 지구는 내륙성, 동쪽의 소금강 지구는 해안 기후의 특성을 보인다.

부드러운 산세와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월정 지구와 달리 소금강 지구는 기암괴석과 폭포, 소 등이 어울려 절경을 연출한다.

 

소금강이라는 이름은 무릉계에서 시작해 노인봉(1338m)에 이르는 약 10km의 계곡이 금강산의 축소판이라 해서 유래했다. 

 

 


소금강 지구는 국립공원이 되기에 앞서 1970년 우리나라 명승 1호로 지정된 바 있다. 주요 명소로는 무릉계, 삽자소, 연화담, 명경대, 식당암, 구룡폭포, 만물상, 백운대, 낙영폭포 등이 있다. 

 

 

 

 

월정사 경내로 들어서게 되는 천왕문

 

 

 

 

 

 

 

금강루

 

 

 

 

 

 

 

 

 

금강루 입구에 있는 한쌍의 사자중 한 마리에게 누군가 눈뭉치를 물려놓았다.

처마 밑에 위치하고 있어 눈 맞을 일어 없었을텐데.ㅋ

 

 

 

 

 

 

 

 

저녁예불을 앞두고 공양간을 찾아 간단히 저녁공양을 한다

 

 

월정사 설경 (사진)

 

 

 

 

 

공양하는 보살 석조좌상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국보 제48호. 높이 15.2m. 6·25전쟁 때 일어난 화재로 이 절의 건물과 함께 심하게 손상되었으나

현재  보수되었으며, 특히 상륜부가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고려시대 초기에 유행한 다각다층(多角多層) 석탑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적광전

 

 

적광전 : 과거칠불을 보신 칠불보전이 있던 자리였으나 6.25때 소실되고 1968년 만화스님이 중건하였다.

처음에는 대웅전으로 석가모니불을 모셨는데..화엄경에 조예가 깊으셨던 탄허스님이 비로자나불을 모신다는 의미로 현판만 바꾸어 달았다  

 

 

월정사 성보박물관

 

 

 

 

 

 

어느듯 저녁예불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리고

 

 

 

특이한건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분들을 전부 종고루에 모셔

한 명 한명씩 타종을 하게 하였다

 

 

종을 치는 모습이 좋아보여 나도 동참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템플스테이를 하시는 분들만 동참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는 1시간 반동안의 저녁예불

 

 

월정사의 밤 풍경

오후 8시경 저녁예불이 끝나고

 

 

조명을 받은 팔각구층석탑과 그 앞에 공양하는 보살상이 더욱 장엄해보인다

 

2010년 2월 21일 새벽 3시에 출발하여 선자령-양떼목장-황태덕장-발왕산-월정사로 이어진 모든 일정을

오후 8시에 마무리하고 서울집으로 오니 저녁 10시 10분이 되었다.

 

19시간을 돌아다닌 기나긴 하루였다.

 

 

**************************************************************************************************

 

2004년 1월 대관령 눈꽃축제와 월정사 방문때 찍은 사진입니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에서 걸어오시면서 자연스레 모델이 되어주신 비구니스님  - 제 작품사진입니다

 

 

대관령 눈꽃축제에서 아이들을 썰매태우며..

 

 

잘 보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