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120701 여강길따라 신륵사로 05 신륵사

관오덴짱 2012. 7. 2. 19:57

120701 여강길따라 신륵사로 05 신륵사

 

 

 

 

신륵사 [神勒寺]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고려 말인 1376년(우왕 2) 나옹(懶翁) 혜근(惠勤)이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한데, 200여 칸에 달하는 대찰이었다고 하며, 1472년(조선 성종 3)에는 영릉 원찰(英陵願刹)로 삼아 보은사(報恩寺)라고 불렀다.

 


신륵사로 부르게 된 유래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하나는 “미륵(혜근을 가리킴)이, 또는

혜근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龍馬)를 막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려 고종 때 건너마을에서

용마가 나타나, 걷잡을 수 없이 사나우므로 사람들이 붙잡을 수가 없었는데, 이 때

인당대사(印塘大師)가 나서서 고삐를 잡자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神力)으로 말을 제압하였다

하여 절 이름을 신륵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려 때부터 벽절[甓  寺]이라 불려지기도 하였는데, 이는 경내의 동대(東臺) 위에 있는

다층전탑(多層塼塔)을 벽돌로 쌓은 데서 유래한 것이다.

 


이 절의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180호인 조사당(祖師堂), 보물 제225호인 다층석탑, 보물 제226호인 다층전탑, 보물 제228호인 보제존자석종(普濟尊者石鐘), 보물 제229호인 보제존자 석종비(普濟尊者石鐘碑), 보물 제230호인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 보물 제231호인 석등이 있으며,

 

유형문화재로는 극락보전(極樂寶殿) 과 그이외의 부속건물로 구룡루(九龍樓) ·명부전(冥府殿)·시왕전(十王殿)·산신당·육각정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강가에 위치한 절이다

 

 

 

 

절마당 가운데 위치한 세심정

 

 

 

 

극락보전으로 오르는 길 가운데 위치한 구룡루

 

 

 

 

구룡루의 왼편에 위치한 범종각

 

 

 

관음전

 

 

명부전

 

 

 

보호수 - 향나무

 

 

 

 

조사당   보물 180호  조선초기건축

 

 

 신륵사 경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조사당내에는  중앙에 지공대사 좌,우에 무학대사 나옹선사의 영정이 있다

 

 

 

 

신륵사 주불전인 극락보전

조선 숙종때 지어지고 정조때 중수되었다

 

 

 

아미타불을 모시고 좌우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셨다

 

 

 

극락보전에서 서불산의 예불을 진행하였다

 

 

극락보전 마당의 다층석탑과 구룡루

 

 

 

구룡루

 

 

 

신륵사 다층석탑  보물 225호

 

 

흰색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높이는 3M에 달한다

 

 

다층석탑에 새겨진 용과 구름문양

 

 

향나무

 

 

 

극락보전과 다층석탑

 

 

 

 

 

 

신륵사 원구형석조부도

신륵사 팔각원당형석조부도

 

 

 

신륵사 팔각원당형석조부도

 

문비가 새겨져 있다

 

 

 

신륵사 전경

 

 

 

보제존자(나옹선사) 석종과 탑비 석등으로 오르는 길

 

 

보제존자 석종 보물 228호

고려말 나옹선사의 부도를 모신 부도탑이다

 

 

나옹선사(懶翁禪師) 1320~1376)

 

 

공민왕의 왕사이며.고려 말기의 고승으로 휘는 혜근(慧勤), 호는 나옹(懶翁), 과 강월헌(江月軒)이고,

시호는 선각(先覺)이다

 

 

본 이름은 원혜(元慧)이다. 속성은 아()씨인데 고려 말 예주부(지금의 경북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에서

출생하였다.

 

 

고려말 고승으로 20세 때 친구의 죽음을 보고, 출가해 공덕산 묘적암(妙寂庵)의 요연(了然)선사에게서 득도했다.

 

 

1348(충목왕 4) 원나라에 가서 연경(燕京)의 고려사찰인 법원사(法源寺)에서 인도 승려 지공(指空)의 가르침을 받았다.

 

 

선사는 견문을 더욱 넓히기 위해 중국 각지를 편력하며, 특히 평산 처림(平山處林)

천암 원장(千巖元長)에게서 달마(達磨)로부터 내려오는 선()의 요체를 배워 체득했다.

 

 

 

 

 

보제존자 석종비 보물 229호

비문은 이색이 짓고 서예가 한수가 썻다

 

 

그는 원나라 유학을 했고, 인도의 고승 지공(指空)스님의 제자로서

인도불교를 한국불교로 승화시킨 역사적 인물로서 경기도 양주군 회암사 절터가 있는데

경주의 황룡사 절터보다 규모가 큰 우리나라 최대의 사찰로 중창했고,

조선 태조 왕사로서 한양천도의 주요 인물인 무학대사는 그의 제자였다.

 

 

 

 

 

 

보제존자 석종앞 석등

 

나옹, 지공, 무학, 세분의 부도와 비석이 회암사터의 뒤쪽에 현존하고 있는데,

비석은 조선왕조 유학사상의 지주였던 목은 이색이 찬하여 지금도 비문이 남아있다.

 

 

그 출생지 부근에 장륙사라는 조그만 사찰이 있는데 고려 공민왕때

건물과 건물 내벽에 그의 초상화가 남아있습니다.

 

 

그가 입적한 남한강변 여주 신륵사에도 사리를 봉안한 부도와 비문이 남아 있다.

 

 

 

 

석등 보물 제 231호

 

 

 

화려한 비천상의 조각이 일품이다

 

 

 

 

아래의 나옹선사의 시는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선시중의 하나다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憎兮    (료무애이무증혜)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怒而無惜兮   (료무노이무석혜)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솔밭에 싸인 신륵사

 

 

신륵사 솔밭

 

 

수목장

 

 

 

 

 

신륵사 대장각기비 보물 230호

 

 

 

 

신륵사 다층전탑   보물 226호

 

 

고려시대 유일한 전탑으로 높이 9.4M이다

 

 

 

 

 

 

 

신륵사 삼층석탑

 

 

 

 

강월헌

 

 

 

내가 찍은 첫번째 단체사진

 

 

회장님이 찍으신 두번째 단체사진

 

 

두번째  사진에서 내사진만을 복사하여..

 

 

첫번째 단체사진에 내사진을 붙임..ㅋ

 

완벽한 전체 참가 회원의 단체사진입니다.

 

 

신륵사 삼층석탑에서 바라보는 여강

 

언제 보아도 여유롭고 넉넉한 풍광이다

 

 

 

 

 

 

 

 

 

 

 

구룡루

 

 

신륵사 전경

 

 

신륵사를 나오며

 

회원분들의 건의로 이천쌀밥을 먹고 가자고 의견이 모아져서

이천시내에 있는 이천쌀밥집 '동강'으로 이동

 

 

 

 

이천쌀밥 동강에서 저녁 한상까지 먹고선 서울로 ..!!

 

 

120701 서불산 여강길 걸어 신륵사까지

 

너무도 즐겁고 행복한 순례길이었습니다.

함께한 법우님들

부처님 가피속에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