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111224-25 강릉 01편 감자옹심이 신복사지 굴산사지

관오덴짱 2011. 12. 24. 20:14

111224-25 강릉 01편 감자옹심이 신복사지 굴산사지

 

12/24 첫날일정

 

1 강릉 감자옹심이 

2 신복사지

3 굴산사지

4 등명낙가사

5 금진항 헌화로

6 두타산 무릉계곡 삼화사

7 옥계휴게소(상행)

8 정동진 숙박

 

12/25 둘쨋날일정 :

 

 9 정동진

10 강릉 커피공장 테라로사

11 초당순두부

12 허난설헌 생가

13 선교장

14 경포대

15 안목해변

 

 

111224 모처럼 토요일  연휴를 만들어 

오전 7시 서울에서 출발하여 강릉에 10시 좀 넘어 도착하였다

 

강릉 감자 옹심이 033- 648-0340


 

 

111204  방영된 KBS 1박2일 강릉편에서 소개된 강릉 옹심이 집은 허름한 주택에 있다

 

도착한 10시 30분쯤   줄을 서서 들어가고 있어  들어서니 앉을 자리가 없이 꽉찼다

 

전 테이블이 다 차면  한번 회전할동안 기다려야 할 판이었으나

주인이 합석을 시켜주어  기다리지 않고 들어가 앉을 수 있었다

 

 

유명 인사들의 싸인들

바로 한 달전 1박2일 팀이 다녀가면서

강릉의 옹심이와 안목해변의 커피거리가 유명세를 타고 있던 시점이었다

 

 

111204일 방영된 1박2일은 11월 18일 촬영되었다

이승기의 싸인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되면서 옹심이 메뉴는 없어지고 칼국수에 옹심이를 넣은 메뉴만 팔고 있었다

감자 옹심이 만들기가 손이 많이 간다고 한다

(2015년 12월 다시 방문시에는 감자옹심이 메뉴가 다시 있었다)

 

 

 

잠시의 기다림 끝에 김치 두 접시와 함께 나온 감자 옹심이 칼국수

 

 

 

이승기의 표현대로 감자옹심이의 아삭 아삭 씹히는 감이 참으로 독특하고 맛있다

그냥 옹심이만 먹는 것 보다  옹심이 칼국수가 더 낳은 것 같다 ^^

 

 

 

 

감자 송편도 미리 얘기하여 포장하여 들고 나왓다

 

 

 

강릉의 폐사지인 신복사지

진입하는 입구가 골목이라서 찾기가 좀 어렵다 

 

 

강릉 신복사지[ 江陵神福寺址 ]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에 있는 폐사지


신복사(神福寺)는 통일신라 때  구산선문 중 사굴산문을 개창한 통효 범일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범일국사(梵日國師)가  굴산사(掘山寺)와 함께 창건하였다.

창건 이후의 기록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신복사의 금당지는 삼층석탑의 남쪽 10m 지점에 있으며, 정면 5, 측면 3칸의 구조로 되어 있다.

여러 차례의 증·개축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복사지의 배치는 삼층석탑을 기준으로 뒤에는 금당지, 양쪽 옆에는 회랑지가 있는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배치양식이다.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 ( 보물 제 87호) 과 석조보살좌상 (보물 제 84호)


현재 신복사의 옛 터에는  삼층석탑(보물 제87)

공양하는 보살상인 석조보살좌상(보물 제84)이 남아있다,

 

神福(신복)’, ‘神福寺(신복사)’라고 새겨진 기와 조각이 출토되었다.


 

 

 

 

삼층석탑과 공양상이 있는 신복사지

 

신복사지는  절터가 산으로 둘러싸인 명당에 자리를 잡고 있으나

터는 조그마하여 작은 암자 터 정도로 보여진다.

 


범일 국사는 신복사지와 바로 이웃한 굴산사에 머물며

강릉 지역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분이다. .




신복사지 삼층석탑[ 神福寺址三層石塔 ] 보물 제87

이 절터의 특징은 특이한 형태의 삼층석탑과 석탑 앞에 있는 공양보살상이다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신복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화강석 3층석탑 

이중기단(二重基壇) 위에 세운 평면 사각형의 석탑으로서,

각부의 가구(架構) 방법에 특이한 점이 있다.


 

삼층석탑은 고려 초기 특유의 공예적 아름다움을 잘 반영하였고

2층 기단위에 탑신을 세우고 그 위에 상륜부를 올려놓았다.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은 몸돌사이에 별도의 돌을 하나식 끼워 넣는 수법인데

목조건축에서 볼 수 있는 난간의 퇴화한 형식을 빌려온 보기 드문 작품 중의 하나이다

 

넓은 지대석(地臺石)이 있고, 그 윗면에 연꽃잎 24장을 빙 둘러 새기고,

면석(面石)에는 면마다 안상(眼象)을 조각하였다.

아래 기단 갑석(甲石) 위에는 받침을 새기고, 그 위에 따로 4각형의 석재(石材)를 끼워 놓았다.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 神福寺址石佛坐像 ] 보물 제84

 

신복사지3층석탑 바로 앞에 세워져 있다.

석탑을 향하여 공양을 하고 있는 모습의 석조보살좌상 (보물 제 84)은 왼쪽 다리는 세우고,

오른쪽 다리는 꿇어앉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원통형의 관을 쓴 얼굴은 얼굴은 부드럽고 복스러우며 입술은 꼭 다물었으나 미소를 머금고 있다 

 관 밑에는 새끼를 꼰 것 같은 머리카락이 어깨 너머로 길게 늘어져 있다.


두 손은 가슴에 모아 무엇을 잡고 있는 자세이며, 풍만한 몸의 뚜렷한 굴곡이 얇은 천의(天衣) 속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팔찌나 목걸이들은 굵은 띠로 표현하였으며,

두 다리 사이의 옷자락에는 청동제의 촉대(燭臺) 같은 것이 두 개 서 있는데,

지금은 부러져 원형을 알 수 없다.

 

 

공양보살좌상은 월정사 공양보살상과 한송사지 보살상 등과 비슷한 유형으로

같은 유파의 걸작품이라 할 수 있다.

대좌는 보살이 들어앉을 수 있도록 둥글게 팠으며, 둥근 바깥면에는 복판연화(複瓣蓮華)가 새겨져 있다.

이 보살상은 한때 유행하던 석탑 앞의 조상(彫像)이며,

그 수법(手法)이나 탑의 양식 등으로 보아 고려 초의 것으로 생각된다

관동지역에 많이 나타나는 걸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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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선문 중 가장 컸던 굴산사지

 

굴산사는 신라 말 사굴산문을 열었던 고승 범일국사가 창건했고

구산선문 중에서 규모가 가장 컸던 절로 알려져 있다.

 

지금 남아 있는 유적으로는 굴산사지 당간 지주와 부도탑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그 외에도 형태를 잘 알아볼 수 없는 석불과 초석, 전설로 전하는 석정(石井)등이 남아 있다.



굴산사지 초입에 위치한 굴산사지 당간지주(보물 제 86)


 

굴산사지에 남아 있는 유물 가운데 당간지주는 옛날 당간(둥근 막대기)에 당(깃발)을 달아

이곳이 사굴산문의 영역이고 오늘은 어떤 법회가 열리는 지를 멀리에서도 볼 수 있게

내걸었던 것이다.







당간지주는 사원의 영역을 나타내기 위해 절 마당에 배의 돛대와 같이 높은 장대를 세웠다.

당간의 끝에는 깃발인 당을 달아 놓았다.





 

   

당간지주는 높이가 5.4m이고 두 지주의 간격은 40cm로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당간은 없어지고 그를 지지했던 당간지주만이 남아 있으나 지주의 규모가 엄청나다.



보통 당간이 지주의 서너 배가 된다고 보면 굴산사지의 당간은 10층 건물의 높이는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수 있다.













2013년 8월 1일 다시 찾은 굴산사지 당간지주





보통은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나...

사람의 키와 크기를 비교해 보기 위해 살짝 발을 들였다







굴산사지 석불좌상 강릉시 문화재 자료 38

    

또 이곳에는 보호각에 석불이 하나 모셔져 있는데 누군가가 일부러 얼굴을 망쳐 놓아

얼굴의 형태를 알아볼 수는 없다 

 


 

 

 

그러나 손 모양을 봤을 때 지권인이라고 하여 통상 비로자나불이 취하고 있는 손모양을 하고 있다.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머리에 큰 보관을 쓰고 있는 것이 이 불상의 특징이다.

 

 

 

 

 

 

석불좌상을 보고 나오는 길에서 다시 굴산사지 당간지주를 본다

뒤로 하얗게 눈을 쓰고 있는 태백준령이 보인다

 

 

당간지주가 있는 곳에서 차로 2-3분을 올라가면 굴산사지가 있다

 

 


서낭당

 

마을 뒷산마루에 돌무덤으로 왕릉처럼 높게 쌓였던 서낭당이다

    

 

 

당간지주에서 차로 조금 떨어진 곳에 굴산사지가 있다

굴산사지는 아직 발굴중이다

 

굴산사는 통일신라 때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창건한 절로, 창건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석천

 

신라의 한 처녀가 우물에 비친 햇빛을 보고 그 물을 마셨는데 곧 아이를 배어 낳게 되었다.


 

 

  

집안 사람들이 아이를 학바위에 내다버렸으나, 백학이 아이를 돌보고 아이의 주위로 빛이 맴돌아

괴이하게 여겨 다시 데려와 길렀는데, 그 이름을 범()이라 하였다.

 


범이 출가하여 승려가 된 후 고향에 돌아와 신복사와 굴산사(掘山寺)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석천 위에 모셔진 불상

 

 

석천에는 지금도 물이 고여있다

 

 


강릉 굴산사지 승탑(江陵 掘山寺址 僧塔) 보물 제85

 

굴산사지의 얕은 야산에 있는 굴산사지 부도는 이 절을 세운 범일국사의 사리를 모신 부도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부자재의  조각

 

 

굴산사지 승탑의 화려한 조각

 

 

 

 

탑의 맨 아래층에는 빙둘러서 사자들을 조각하였다

 

 

 

 

 

부도탑에서 내려다보는 발굴중인 굴산사지

 

 

 

굴산사지를 나와서는 등명낙가사를 향하여 가면서..

안목항의 군함 전시장

 

2편 등명낙가사와 헌화로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