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상판석(敎相判釋) / 오시교판(五時敎判)
교상판석(敎相判釋)
부처님이 일생동안 설한 가르침을 분석하여 그 성격에 따라 시기별로 분류한 방법론. 줄여서 교판(敎判)·교상·판교(判敎)·교섭(敎攝)이라고도 한다.
즉, 불교의 다양한 교설(敎說)들을 여러 범주로 분류·종합하여 하나의 유기적인 사상체계로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원시적 형태의 교판 및 그 근거는 이미 인도의 대승불교 논사(論師)들의 저작 및 대승불교 경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교판은 중국에서 구마라습(鳩摩羅什) 이후부터 시작되어 9세기까지만 해도 약 30명의 대표적인 교판가(敎判家)들이 나왔으며, 한국과 일본에서도 교판이 행하여졌다. 교판은 원래 불교의 여러 경론(經論)이 한역(漢譯)되어 전파되는 과정에서, 그 다양하고 때로는 모순되어 보이는 교설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불교의 참뜻을 파악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교판은 실제로는 각 종파(宗派)의 교의(敎義)를 선양하는 의도로서도 행해졌고, 따라서 교상판석은 종파 성립의 필수적인 요건처럼 되기도 하였다. 중국의 가장 대표적인 교판가로서는 천태(天台) 지의(智顗)를 들 수 있다. 그는 수(隋)나라 이전의 ‘남삼북칠(南三北七)’로 대표되던 교판가들의 교판을 종합하여 ‘오시팔교(五時八敎)’라는 잘 정리된 교판을 제시하였다. 즉, 그는 석가의 설법을 다섯 시기[五時]로 나누고, 교화방법의 형식과 교화내용의 특징을 각각 넷으로 나누어 팔교(八敎)로 구분하였다.
한국인으로서 특히 신라시대의 원효(元曉)가 행한 사교(四敎)의 교판은 중국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즉, 그는 여래(如來)의 교설을 크게 삼승(三乘)과 일승(一乘)으로 나누고, 다시 전자를 별(別)과 통(通)의 이교(二敎)로, 그리고 후자를 분(分)과 만(滿)의 이교로 나누었는데, 이는 전혀 종파성이 배제된 그의 회통적(會通的)인 불교이해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시교판(五時敎判)
모든 경전을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그것을 시간적으로 재배치한 것을 말한다. 중국 천태종의 오시팔교가 대표적이다. 이 같은 교판은 수많은 경전을 독자적 사상체계로 분류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작업이지만, 사실에 기초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허구로 본다.
부처님께서 성도 이후 49년간 설하신 것을 연도별로 분류해서 화엄경 21일/아함경 12년/방등경 8년/반야경 21년/법화경 8년으로 나누었는데 이것을 시로 외우면 다음과 같다
最初華嚴 三七日 阿含十二 方等八 二十一載 談般若 終談法華 又八年
법화경(法華經) 신해품에 있는 못난 아들의 비유(궁자유:窮子喩)에 잘 나타난다.
窮子驚愕 華嚴時(궁자경악 화엄시) 除糞定價 阿含時(제분정가 아함시)
出入自在 方等時(출입자재 방등시) 令知寶物 般若時(영지보물 반야시)
傳付家業 法華涅槃時(전부가업 법화열반시)
옛날 어떤 사람이 한 아들을 두었는데 그 아들은 어려서 집을 나가 떠돌기를 수십년, 거지가 되어 유랑하였다. 그 아버지는 큰 부자가 되었어도 아들 찾기에 부심하던 중 어느날 대문 밖에서 기웃거리는 거지를 보는 순간 자신의 아들임을 알고 뛰어나가 붙잡으려하니 그 거지는 놀라움과 두려움에 도망을 가는 것이었다.
이를 본 아버지는 이대로 아들을 붙잡으려하면 안되겠다 싶어서 방편으로 하인을 시켜서 그를 유인하여 똥이나 거름을 치우는 품팔이를 하도록 하였다. 그러다가 차츰차츰 그 집안 분위기에 익숙해져서 출입을 자유롭게 하다 보니 그 집의 재산 상황을 환히 알게 되었다. 그때 비로소 그 아버지는 그를 불러 전 재산을 관리하도록 배려를 했고, 그가 성숙함에 따라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그가 아들이란 이야기를 하며 그 아들에게 자신의 모든 재산을 물려주겠노라고 선포했다는 이야기다.
이 간단한 비유의 내용 속에 부처님의 일생에 걸쳐 설하신 교화의 순서가 그대로 수용되어 있다.
대체로 아들이 처음 아버지를 만나 놀랐던 때를 궁자경악 화엄시(窮子驚愕 華嚴時)라 하여 화엄경을 설할 때와 같다고 보는 것은 화엄경이 부처님의 깨달은 내용을 듣는 사람의 사정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채 직설로 이야기했기 때문에 근기가 얕은 사람들은 놀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의 근기에 맞추어 방편으로 똥을 치우고 삯을 받는 것은 아함경(阿含經)을 설할 때로서 제분정가 아함시(除糞定價 阿含時)라 하여 이같이 표현했고, 여러 해가 지나서 그 집에 자유롭게 출입할 때를 방등부 경전(方等部 經典)을 설할 때로 출입자재 방등시(出入自在 方等時)라 하였다.
이후 점차로 온 집안 살림을 알게 된 것은 반야경을 설할 때라 하여 영지보물 반야시(令知寶物 般若時)에 배대(配對)하고 이어서 모든 재산을 모두 아들에게 상속시키는 때를 전부가업 법화열반시(傳付家業 法華涅槃時)라 하였으며, 법화 열반경(法華 涅槃經)을 설할 때를 부처님의 모든 사상을 다 드러내어 상속하는 것으로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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