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법의 말씀

但知不會 是卽見性(단지불회 시즉견성)

관오덴짱 2020. 9. 28. 19:21

 

但知不會 是卽見性(단지불회 시즉견성)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 이것이 곧 견성이다.

보조국사 지눌(知訥) <수심결>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이다.

   

그대는 알지 못한다는 아는 것이 왜 견성인가?”라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는가?

이 간단하고 짧은 문구에 깨달음의 핵심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면, 그대는 아마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다.

그대가 만약 이 문구가 가리키는 바를 즉각적으로 알아차린다면 그대는 곧 바로 견성한 것이다.

   

우선 여기서 말하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 무엇을 가리키는가를 알아야만 한다.

알지 못한다는 것은 분별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나와 너, 이것과 저것, 아름다움과 추함, 옳음과 그름, 잘나고 못남 등 언어에 의한 모든 상대적인 분별이 끊어진

상태, 생각이 들어오기 이전을 말한다.

   

그러나 이 상태에서도 모른다는 것, 분별이 없는 상태에 대한 앎은 있다.

이것이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상태이다.

이 상태가 바로 알아차림이 스스로를 알아차리고 있는 상태이다.

깨달음이 또렷하게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른다는 것은 아는 이 상태가 진정한 자신을 곧 바로 알아차린다면 그것이 곧 견성인 것이다.

   

순수한 알아차림이 생각 이전의 상태다.

여기엔 어떤 분별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순수한 알아차림이 한정된 어떤 특정한 의식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 순수한 알아차림은 24시간 언제나 있다.

잠과 꿈, 그리고 생시의 배경으로 언제나 한결같다.

   

생겨나지도 없어지지도 않는다.

늘어나거나 줄어들지도 않는다.

더럽혀지거나 깨끗해지지도 않다.

   

원래부터 완전하다.

그래서 닦을 필요도 없고 수행을 통해 완성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그대 자신임을 바로 보기만 하면 그것이 곧 견성이다.

 

 

죽비를 친다.

! ! !

그대는 지금 이 소리를 알아차리고 있다.

그러나 생각에 의한 어떤 분별도 없다.

   

지금 당장 알아차리는 그 놈을 붙잡아라!